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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얼굴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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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식 Sep 04. 2024

사랑이라는 열병

3 : 사랑이라는 열병 

몇 주가 지나자 너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갑자기 충동적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어느새 내 몸은 서울역에 있었다.  경부선  기차를 탔다.. 

부산 역에 내렸다.  주소를 보고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내렸다. 


그녀가 사는 동네라고 생각하니 그녀의 체취가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옛날 기와집이었다.  밖에서 오래 기다렸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이 동네가 수진이가 낳고 자란 동네 

라고 생각하니 정겨워졌다.


 보고 싶은 충동적 마음에 내려오긴 했지만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다시 밤기차를 타고 돌아와야만 했다. 그녀 근처에 갔다 온 것 만 

해도 위로가 되었다. 


동네 안  같은 공간에서 그녀가 매일 지나가는 도로를 밟고 가는 길을 따라 걸어본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돌아오는 밤 기차 안에서 약간은 우울했지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소니 녹음기에 귀를 꽂고 노래를 들으며 편지를 썼다.


“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 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내 사랑을 “

이장희의  노랫말도 적어 보았다.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녀에게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만나자마자 

그녀는 내게 물었다. 


수진 : 그날 왜 부산에  왔다가 그냥  갔어? 편지라도 하고 오지! 기다렸을 텐데!

나 :   아니! 그냥 갑자기 보고 싶어서  그랬어! 너무 생각나서 근처라도 갔다 오고 싶었어. 

그녀는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손에서 전해오는 온기가 따뜻하다. 온 마음이 전해 오는 듯했다. 

내 마음도 동시에 그녀에게 전해지리라 생각했다. 

말없이 손을 잡다가 “ 오늘 저녁은 내가 살게! 하면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걸어가며 내게 팔짱을 했다. 그녀의 옆가슴이 포근하고 따뜻하다. 


학교 앞 짜장면 먹으러 가자!  나는  팔짱 끼고 걸어가는 우리를 보며  남이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이렇게 팔짱을 해도 괜찮아 친구들이 보면 어떡하려고! 

수진 : 보라지 뭐  , 어때! 나는 좋은 데  뭐!

솔직한 대답에 잠시 놀랐다. 그 후론 우리는 항상 팔짱 끼고 다녔다.


웃으면서  힘차게 나를 끄는  그녀 의 머리카락에서  샴푸냄새가 전해왔다. 

그녀의 긴 머리에서  아카시아 향기가 났다. 

걸어가는 이 순간이 영원이었으면 -- 


가만히 생각하면 그 향기가 지금도 내게 전해온다. 

우리는 그렇게 만나고  사랑을 했다. 


얼마 후 가을 축제 가 시작되었다. 파트너를 동반하고 와야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녀와 함께 입장하자 친구들이 다가온다.  세진아! 수진아! 너희들 멋지다 야! 

내 눈에는 그녀가 이 스테디움 안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 같았다. 


디스코 음악이 흘러나왔다. 남녀가 함께 디스코 댄스를 추는 시간이었다. 우리도 

나가서 춤을 추었다.  디스코장은 가봤어? 응  딱 한번!

그냥 막춤을 추어도 그녀는 예뻤다.  

 디스코 음악이 끝이 나자 들어가려 하는데  부르스 한  음악이 나왔다. 많은 커플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나의 왼손은 그녀의 손을 잡고 오른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부르스 한 음악이 정신을 희미하게 만든다.  모르겠다.  그냥  안고 돌면 되지 뭐.

. 그래도 박자를  생각하며 리듬에 몸을 맡겼다. 


그녀는 나에게 거의 몸을 밀착했다.  스텝이 엉킬까 봐 그런지 가까이 다가왔다. 

이렇게 가깝게 그녀를 대한 것은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이렇게 가깝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오른손을 그녀 허리를 더 가까

이 잡아당겼다. 


그녀의 손을 잡고 가슴을 부딪히며  스텝을 밝으며 느켜지는 감정은 처음 느끼는 

이상한 감정이었다.

그녀의 몸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도 싫은 눈치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몸을 밀착시키며 춤을 추었다. 

축제를 마치고 집까지 바래다 주기 위해 버스를 탔다. 정류장에 도착하여 골목길을  

함께 걸었다.  


집 앞에서 막상 헤어지려니 헤어지기가 싫었다. 

나:    우리 조금만 더 있다 갈까?

수진 : 그럴까 조금 올라가면 정자가 있는데 가자.


그때도 그녀는 나에게 팔짱을 하며 몸을 붙였다. 

골목길을 조금  올라가니 언덕 위에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 앉아 머리를 그녀의 무릎에 대고 누웠다. 


하늘에 별이 반 짝인다. 아래서 위를 쳐다보니 그녀의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간지럽게 한다. 머리카락사이에 그녀의 커다란 눈이 나를 내려다본다. 

그녀의 손이 내 머리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우리 우리만의 조그만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지? 

내가 건축과 다니니 다음에 집 지으면 조그만 공간을 만들어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우리 집을 함께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지! 


호수가가 보이는 언덕 위에 하얀 집을 짓고 마당에는  벤치를 만들고 호수를 바라보며 

어깨를 기대고 석양을 바라보는 그런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 층집을 짓고   이층 방을 통해서 산과 강이 보이도록 큰 창문을 내고 

앞마당에는 잔디를 심고 집주위에는 나무를 심고  코너에는   조그만 연못을 만들고  

폭포를 만들자고 합의를 했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함께 행복하게 사는 꿈! 우리는 함께 있고 싶은 거였다. 


그러나 운명의 신 은 우리를 그냥 그대로 두지 않았다. 



다시 현실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헤어지기가 싫다. 

가기 싫다고 말했더니 , 그럼 우리 집으로 갈래?

그녀의 방은 밖으로 창문이 하나 있었다.  앞문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옆 창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수진이는 내 방에 한번 들어와 볼래? 하고 물었다.  그래도 될까? 근데 언니가 

알면 안 되잖아! 

그래서 먼저 내가 들어갈게! 그리고 방에 들어가서 문을 열어 놓을게! 신호를 보내면 

창문으로 조용히 들어오면 돼!


우리는 지금 아주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왠지 오늘은 혼자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나 ; 그럼 밖에서 기다릴게! 집으로 들어가면 방에 불을 켜고 창문을 열어놔!

 들어오라는 신호는 불 한번 깜박하면 들어갈게!


우리는 지금 겁을 상실한 거 맞다.  조금 후에 그녀 방에 불이 켜지고 신호가 왔다. 

조심조심 조용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가 그녀 방 창문 옆으로 다가갔다. 

창문을 올라서자 그녀가 잡아준다. 


언니랑 형부는 잠들었어! 귀속말로 속삭였다. 

그녀의 방은 침대, 옷장, 책상  이 전부였다. 침대 옆으로 가서 침대에 걸쳐  앉았다. 

커튼을 닫고 불을 끄고  프레쉬를  켰다.  


 혹시 우리말이 들릴까 봐 귀속말로 하다가  아예 이불을 덮어쓰고 안에서 이야기했다. 

혹시 이러다 내가 잠들면 새벽에 깨워!  응 알았어! 

너무 스릴이 있었다.  근데 내가 코를 골면 어떡하지? 깨워줘  오케이.


우린 이불을 덮어쓴 채로 앉았다. 그런데 오늘 하루 너무 피곤했는

나는 너무 졸렸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 잠이 들어버렸다.


길게 누워 있는 나를 보고 있었는지  이른 새벽 눈을 떠보니 옆에서 그냥  

나를 바라보고 있는 눈이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순간 여기가 어디지? 어젯일이 생각이 났다. 

그녀는 밤을 꼬박 새운 것 같다. 한숨도 자지 않고 나를 지켜준 것 같다. 

 조용히 그녀를 껴안아 보았다. 


한참 동안 서로를 안은 채  그렇게 우리는 침묵을 했다. 서로를 안고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인제 가야겠다.!  다시 창문을 넘어 나갔다.  아직은 전봇대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녀는 창문으로 내가 가는 길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모퉁이에서 돌아가며 그녀에게 손짓을 했다. 하트모양을 하며 웃어

보였다. 그녀도 하트모양을 하며 웃어주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함께 밤을 새운 것이다. 우린 열병에 걸린 거다. 

“사랑이라는 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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