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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래 Mar 04. 2019

당신은 변기 레버를 손으로 내리는 사람인가요?

다시 '손내림족'이 되기까지의 짧은 여정


 몇 해 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공중화장실 좌변기 레버를 '발'로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작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났다! 공중화장실에 스스로  드나들 수 있게 되고 나서부터 단 한 번도 변기 레버를 발로 내려본 적이 없는 나(이하 '손내림 족')로서는 '발내림족' 이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발내림족'에게는 '손내림족'이 너무도 이상했던 모양이다. '아니 어떻게 그 비위생적인 물건에 손을 댈 수 있냐'라는 주장은 일견 설득력 있게 느껴졌고, 조심스레 처음으로 변기 레버를 발로 내려 보고 나서, '오, 이렇게 편하고 깔끔한 것을! 아 역시 나는 위생관념이 엉망인 사람이었어!'라는 깨달음마저 얻었다.

  

 세상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고 했던가, 그로부터 몇 해 후에 인터넷 어느 게시판엔가 '손내림족 vs 발내림족'에 관한 토론(?) 글이 올라왔고 "헐.."로 시작되는 댓글 몇백 개가 이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신기해하고, 나아가 서로가 서로를 신기해한다는 사실 또한 신기해하는 '신기함의 뫼비우스의 띠'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훗 이제 당신들도 꽤나 혼란스러울걸'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다가 어떤 댓글에서 스크롤을 멈췄고, 나는 또 한 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경험했다.


'어떤 사람들은 변기 레버를 발로 내리고 싶어도 내리지 못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손으로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손내림족에서 발내림족으로 개종한 이후, 손내림족으로 살아온 지난날을 후회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발내림족이 향유하던 편리함과 위생관념을 설파하던 내 귓가에 대고 외치는 말 같았다.



 

 선천적인 이유로든 후천적인 이유로든, 낮게는 무릎까지 높게는 허리춤까지 내 한쪽 발을 들어서 변기 레버를 내릴 수 없는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아니, 존재하는 정도가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기만 해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그들은 아주 가까이 있다. 키가 작은 어린이, 허리가 굽은 할머니, 목발을 짚은 아저씨, 만삭의 임산부.


 나는 당장의 내 편리함에 눈이 멀어 당연한 보통의 존재들을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모양이다. 물론 의도하지 않았고, 의도가 없었으므로 당연히 악의도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잘못이 없는 걸까?


완벽하게 차별받는 대상은 완벽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서른 명 남짓한 우리 층 사무실에 남자 직원이 스물여덟 명인 것도, 최근 거리에 '노 키즈존' 카페가 늘어가는 것도, 지하철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을 쉽게 볼 수 없는 것도, 여성이, 아이가, 장애인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없는 편이 편하기 때문이다.


 나의 불편함이라는 사소한 이유가 어떤 존재를 지우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왔음에도, 어떤 이들의 불편함 때문에 지워져 가는 나의 존재를 그렇게 끔찍하게 아까워했음에도, 나는 누군가를 지웠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내가 잘못이 없다면, 그들도 잘못이 없는 걸까?




 저 댓글을 쓴 사람은 실제로  변기 레버를 발로 내리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런 사람을 가까운 주변에 둔 사람일 수도 있고, 나처럼 발이든 손이든 개의치 않아도 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중 누가 되었든, 누군가에겐 손 내림과 발내림이라는 사소한 결정조차 어떤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챈 사람이고, 나는 늦게나마 그리고 부끄럽게나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좋아요'를 눌렀다.


  그리고 나는 손내림족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아, 인간인지라 한 번 느낀 발 내림이 맛 보여주었던 달콤함은 어쩔 수 없었기에, 정확히는 '손가락 내림족' 정도로 노선을 정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확실히 손으로 내릴 때보다는 더 힘들고, 발로 내릴 때보다는 비위생적이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 꼭 나쁜 것일까'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변기 레버를 내리는 두 번째 손가락에 힘이 꾸욱- 하고 들어갔다. 기분 탓일까, 물이 더욱 콸콸 내려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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