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래 Dec 17. 2018

아빠의 버킷리스트

사과하고 싶은 마음과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

가족은 원래 상처를 주고 받는다.

때론 내가 주는 것이 상처인지도 모르고, 때론 내가 받았던 것이 상처였구나 뒤늦게 깨달아가며, 그렇게 흐르는 세월속에서 뒤엉켜가며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의 탑을 쌓아간다. 아니, 감정의 늪이 깊어진다는 표현이 더 맞을까.


아빠의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 나와 동생에게 사과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빠가 지금의 내 나이즈음, 그러니까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었던 시절, 나와 동생에게 주었던 상처들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른이 된 나와 동생에게서 문득문득 어린시절 아빠가 할퀴어놓은 생채기가 보일 때, 아빠는 죄책감을 느끼는 듯 했다.


나는 환갑의 아빠에게서 어린 날 할아버지가 새겨놓은 생채기를 본다.


사남매의 맏이로서 어린나이에 가장이 되어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음에도, 그것이 당연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은 지났으나, 아빠의 청춘도 함께 지나버렸고, 공치사해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삼켜버리기엔 너무 억울한 아빠의 희생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그것이 당연했던 시절이 아빠의 청춘에 상처를 남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난 일이다. 다만, 아빠는 충분히 위로받지 못했다. 멀리는 시대로부터, 가깝게는 할아버지로부터 사과받지 못했다. 희생과 포기가 당연했다고 해서, 수용과 체념까지 쉬운 것은 아니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지만, 어디에라도 말하고 싶은 마음까지 당연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대는 스무살의 아빠에게 가장이라는 어깨에 큰 무게를 지웠고, 나 또한 서른살 이후 아빠의 청춘을 갉아먹으며 자랐다. 누구도 보상해줄 수 없는 아빠의 지난 날에 나는 무한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오히려 나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아빠의 상처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듯, 그래서 아직도 아빠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듯, 아빠도 모르는 새 내게 주었을 상처에 대해 사과하고 싶은 마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상처주었다는 사실에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 정작 당신은 할아버지에게 사과받을 수 없는 그 서러움을 알기에, 그 서러움을 나와 동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런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물론 내게도 아빠가 남긴 상처가 있다. 그 상처가 없었다면 조금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에게 사과받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빠는 최선을 다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 이제는 잘 알기에, 최선을 다해도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빠가 완벽하지 못한 사람임을 내게 사과할 이유는 없다.


앞으로도 아빠는 내게, 나는 아빠에게 서로 상처입히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린 감정의 탑이 무너질 수도 있고, 혹은 더 깊은 늪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하고 싶은 마음과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이라는 큰 두 축이 있는 한, 우리의 관계가 거기서 끝나버리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뒤틀린 관계의 공통점은 서로를 잘 모른다는 것이고, 상대방이 나를 모를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그 뒤틀림이 시작된다. 긴 세월동안 할아버지와 아빠는 서로를 알지 못했고, 서로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저 뒤틀려왔다. 아빠가 내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그 감정이 어떻게 쌓여왔고 뒤틀려왔는지 나는 보았고, 그것은 분명 내게 어떤 가르침을 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별이 내게 알려준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