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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래 Apr 04. 2019

서른에 찾은 내 취미, 수영을 나는 사랑한다.

수영의 역사


처음 수영을 배운 건 여섯 살 무렵이다.


 당시 나는 송탄 YMCA 아기스포츠단 소속(?)이었고, 방학시즌에는 천안에 있는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배웠다. 태생이 소심하고 겁이 많아서 딱히 즐기며 배우지는 못했다. 유치원 수련회에서 찍힌 사진 중에, 물에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멀뚱멀뚱 손가락만 빨며 서있는 사진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한 시간 동안 들어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수영복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즐기면서 배웠던 기억이 없어서였을까? 딱히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기억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정식으로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오늘따라 천체 물리학이 배우고 싶은걸?'이라는 생각이  쉽게 들지 않듯이, 자연스러운 흥미로움이 돋아나지 않았다.

 

 어디 흥미뿐인가, 수영은 여러모로 진입장벽이 높은 운동 중에 하나였다. 학창 시절엔 손바닥만 한 옷을 입고 육중한 배와 엉덩이를 다른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일이 끔찍했다. 더군다나 운동 말고도 세상에 즐거운 게 너무 많았고, 직장인이 되고부터는 퇴근 후 고정적인 시간을 낼 자신이 없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수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다가, 서른 살이 되던 해의 여름, 그러니까 작년, 수영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성훈이 짜장면을 먹고 수영을 하는 모습에 홀린 듯 시립수영장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사실 '수영하고 짜장면을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에 대한 막연하지만 구체적인 기대가 가장 큰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수영을 하게 될 운명이었던 것인지, 바로 다음날이 7월 수강신청 오픈일이었다. 등록기간은 다음날 새벽 5시 40분부터였다. ????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 일찍?? 에이 설마.. 하면서도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5시 35분쯤 눈을 떠서 로그인을 하고 접수를 클릭했다. 당연히 성공이었다. 결제 후, 다시 수강신청 가능인원을 확인했다. 0명이었다. 당연한 성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홀린 듯 수강신청에 성공하고 3개월간 거의 매일 수영장에 다닐 정도로 수영에 빠져들었다. 온갖 이유로 수영을 싫어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는 의자에 3일 정도 앉혀놓고 싶을 정도로 수영은 재밌었다. 출근해서도 전 날 배운 영법을 연습할 생각에 두근거렸고, 하루 종일 러블리스위머, 양정양오와 같은 수영 유튜버들의 유튜브를 탐독했다. 시험기간이 아님에도 무언가를 찾아 스스로 공부해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수영은 '못한다'에서 '한다'로 가는 기간과 방법이 굉장히 짧았다. (물론 '한다'에서 '잘한다'까지 가는 것과는 아주 다른 문제다!)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고, 하는 만큼 느는 정직한 운동이었다. 물론 운동신경이 0으로 수렴하는 나를 포함, 초급반 20명에게 모두 해당되는 일이었다. 25미터를 자유형으로 처음 완주한 날, 엄마한테 100점 맞은 시험지를 자랑하기 위해 학교에서 집까지 전력 질주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엉덩이가 들썩들썩거리는 걸 참느라 애썼다.


 물론 접배평자 (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를 시늉 정도 할 수 있을 만큼 배우고 난 지금은, 그때만큼의 열의는 사라진 상태다. 어떤 배움이든 일정 궤도 이상에 오른 뒤의 성장 속도는 처음에 비해 더뎌지듯, 수영도 일명 '수태기'에 접어들자 예전만큼 신나지는 않았다. '평영으로 가느니 걸어가는 게 빠르겠는데?'와 같은 반항심, '접영은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 같은 쓸데없는 생각이 늘어 예전만큼 수영장을 자주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말에는 아침저녁으로 수영장에 가고, 지역별 수영장을 도장깨기 하러 다녔던 그때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시간이 되면 수영장에 가는 지금도 '수영을 조금 더 빨리 배웠으면 좋았을걸'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호주에 교환학생으로 잠깐 있을 때, 수영을 못한다고 하면 대부분 친구들의 반응은 "뭐라고? 대체 왜?"였다. 레포츠 천국인 호주에 1년이나 있었으면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바다가 있는 집에 살았으면서, 집에 틀어박혀 빅뱅이론이나 보며 낄낄대던 내가 얼마나 그들 눈에는 얼마나 이상했을까? (물론 빅뱅이론은 아직도 내 최애 미드다. 쉘든 사랑해요)


 대학 시절, 꽤 오래 마음을 주고받았던 남자 친구는 자신은 전생에 물고기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물을 좋아한다고 했었다. 동해 바다 마을이 고향이었고, 수영도 잘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함께 물놀이를 가 본적은 한 번도 없다. 아마 내가 좋아하지 않아서였겠지. (그 망할 놈의 손바닥만 한 수영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그의 말을 '그렇구나'라고 흘려 넘기지 않고, 함께였던 동안에 강에서, 계곡에서,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시간을 보냈더라면 스무 살 무렵을 빛내줄 건강한 추억이 하나쯤 더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쩌면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내가 몰랐던 하나의 세계의 문이 열리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듯 말이다. 그것이 공교롭게 나와 맞고 재밌다면 지루한 인생에 활력을 더해 줄 취미 혹은 친구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고, 나와 맞지 않더라도 '이런 세상이 있구나, 이런 세상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구나'라는 사고의 영역이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크로스핏은 한 달 하고 때려치웠다. 나랑 안 맞아)


서른에 찾은 내 취미, 수영을 나는 사랑한다.  FIN.


※ 표지 출처는 오영은 작가님의 '수영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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