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절에도 나의 핸드폰 한 번을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처음엔 그러려니 하긴 했으나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나한테 관심이 없나..?' 좋아하는 사람의 학창 시절 노트 필기까지 궁금한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연히 브런치에 쓴 글이 다음 메인에 떠서 조회수가 폭발했던 날부터 (딱 한 번이었다. 그리고 놀라울 만큼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나를 "작가님! 작가님!"이라고 부르며, 빈 상가건물을 지날 때마다 여기에 작업실 차리자고 주접을 떨면서도 정작 내가 쓴 글은 하나도 읽지 않았다.
내 글에 더이상 관심이 없는 '누구도' 중 하나였던 남편.
느끼는 것보다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공대생 순도 100%인 남편에게 언젠가 내 글을 (강제로) 읽혔을 때, 좋다는 말만 기계처럼 반복하다가 어디가 좋냐고 꼬치꼬치 묻는 내게 '사실 잘 모르겠다'는 충격적인 감상평을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도 아니고, 그냥 잘 모르겠다라니. 그 이후로 나도 약간 골이 나고 자존심이 상해서, 더 이상 읽어보라고 종용하는 것을 멈추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그는 내 글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정작 글을 쓰는 나에게는 관심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문예창작과를 다시 가볼래, 아님 대학원? 요샌 아카데미 같은 곳도 많다던데. 서재에 책상 위치를 바꿔볼까? 한 사람이라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야지! 출판사에 투고는 해봤어? 근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거야?" 우연히 살펴본 그의 핸드폰 검색기록에는 '작가 되는 법, 작가 아카데미, 문예창작과 편입' 등이 가득했다.
김영민 교수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저서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아무리 부부지만 상대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기 바랍니다. 특히 각자, 상대가 모르는 외로운 전투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배우자가 자신이 모르는 어떤 외로운 싸움을 혼자 수행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씩 해주기 바랍니다. 그래서 외로운 전투 중인 상대를 되도록이면 따뜻하게 대해주기 바랍니다.
그렇다. 그는 '그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연애시절, 4년간 편지지만 바뀌고 내용이 하나도 바뀌지 않는 편지를 읽으며 생각했었다. 신은 그에게 탁월한 분석력과 논리적인 감각을 주신 대신, 어이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인 감수성과 표현력을 주셨구나! 책이라곤 '만화로 보는 삼국지'가 마지막인 그에게는 내가 끄적인 짧은 에세이조차 1500페이지짜리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上/下권처럼 부담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늘은 글빨이 어떤가요 작가님! 오늘도 잘 쓰고 계신가요 작가님!'이라고 묻는다. 내가 무슨 글을 쓰는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자기 흉을 보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네가 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짜란다 짜란다 짜란다~!
최근 나는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과 '버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고민으로 혼자만의 '외로운 전투'를 벌이는 중이다. 남편과 공유할 수 없는 종류의 외로움이고, 아직도 그 고민은 끝나지 않았으며, 아마 계속될 것이다. 혼자만 고민하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지고, 나와 가장 가까운 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껴져 화가 나려고 할 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고군분투하는 그만의 외로운 전투에 대해 떠올리고, 책의 말대로 따뜻해지려 노력해봐야겠다.
물론 그에게도 내게 말할 수 없는 '진짜 외로운 전투'들이 많을 것이다. 부부라고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나눌 수는 없으며, 대신 싸워줄 수는 더더욱 없으니 말이다. 오늘따라 유독 힘들어 보이는 이유가 있겠거니, 어깨가 처질만한 일이 있었겠거니, 내 글을 읽지 않으려는 이유가 있겠거니,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무심함이라고 생각했던 행동 속에 문득문득 숨어있는 작은 온기를 발견하고, 그것으로부터 의외로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아주 가끔이지만 말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