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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래 Jun 28. 2020

할머니와 성경책

신은 그녀를 어디로 인도했을까

'지금 당고개, 당고개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종거리며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퇴근시간의 환승역. 주로 발밑을 보며 걷는 사람들도 이때만큼은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앞을 향해 질주한다. 무섭게 휘몰아치는 군중의 파도를 피해 계단 구석에 잠깐 몸을 피한다. 열차는 떠나고 아주 잠깐의 고요가 찾아온다. 서두를 이유가 없기도 했고, 장엄한 경쟁의 대열에 낄 마음도 없던 나는 잠깐의 기다림을 끝내고 난간을 손으로 쓸며 계단을 천천히 내려온다.


좌측의 상행선, 우측의 하행선을 구분 짓는 중앙의 큰 기둥 앞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가 허리를 세우고 꼿꼿이 앉아있다. 할머니 앞에는 손수건, 머리끈, 액세서리, 껌이나 사탕 같은 군것질거리가 번잡스럽게 놓여있다. 그녀의 손에는 찢겨진 성경책 한 구절이 들려있고, 돋보기 너머의 눈은 한참이나 같은 페이지를 응시하고 있다. 그녀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일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거기에 앉아 있기로 결정한 사람처럼 같은 페이지를 읽고 또 읽는다. 


한 걸음 떨어져 한참 그녀를 바라보았다. 행랑보 위에 놓인 잡동사니들은 도대체 어디서 만들어졌고, 언제쯤부터 거기에 놓여있었을까. 그녀는 그동안 몇 개의 손수건을 팔았으며, 몇 명의 주폭자들과 몇 만개의 연민의 시선을 상대했을까. 언제부터 성경을 읽었으며, 어떤 구절을 읽고 있는 것일까. 신이란 그녀에게 무엇일까. 두서없는 물음이 머릿속을 아무렇게나 떠다녔다.


신은 어디에 있냐는 물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를 때마다 그녀가 떠오른다. 

헝클어진 머리, 누추한 행색과 대비되는 꼿꼿한 자세로 신과 마주하던 그녀의 태도는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그녀는 어렴풋이 답을 주는 듯하다가도 이내 더 많은 질문을 던졌다. 


서른 넘어 시작된 어정쩡한 방황에 이유를 붙여보고 싶었으나, 마음이 텅 비었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것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는 먹먹한 시간들이 흐르고 있다. 낮에는 조금 더 시간을 흘려보내자는 안온한 마음이 저녁이 되면 현실로 돌아가라고 채근한다. 같은 시간, 같은 목적지를 함께 향하는 사람 없이 맞이하는 아침, 오롯이 혼자된 마음은 가끔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혼란스러운 승강장 그 한가운데서 아무렇게나 찢긴 성경책 한 조각을 읽고 또 읽는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내가 구하는 것은 내게서 그리 멀리 있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아도, 어쩌면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고이 놓여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언가에 그렇게 간절했던 적이 있던가. 


내가 지금 가라앉고 있는 중인지, 떠오르고 있는 중인지 신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신을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신에게 답을 구하는 마음으로만 살아왔다. 할머니가 내게 전한 메시지는 신을 믿으라는 것도 아니고, 종교에 귀의하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움직이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 할머니가 있던 자리에는 할머니 대신 큰 글씨가 인쇄되어있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불법 이동판매 행위 단속지역'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신은 그녀를 어느 곳으로 인도했을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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