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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래 Dec 26. 2023

수영하는 워킹맘 -1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가보았다

 그날은 복직 3주 차에 접어든 5월의 수요일 점심시간이었다.

 가볍게 샐러드로 점심을 해결한 뒤, 이어폰을 꽂고 산책에 나섰다. 지난 4월, 나는 육아휴직에서 복직하는 동시에 한적한 주택단지에 위치한 교육연수원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이전 근무환경에 비하면 엄청난 삶의 질 개선이었다.

  나는 사무실이 최고의 복지라고 말하고 다닐 만큼 이 공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출근하면 녹음이 우거진 숲 사이에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트레일러와 석탄을 싣고 다니는 화물차 소리가 쿵쾅거리는 도로 옆 사무실에서 일하던 지난날의 내 얼굴색이 왜 석탄 같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근무 환경이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 새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은 꽤 근사했다.

 1년 6개월 만의 복직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처음엔 설렘보다 두려움이 컸다. 그러나 출근하자마자 커피머신 버튼을 누르고, 커피가 쪼르르 떨어지는 동안 눈을 감고 하늘로 고개를 쳐드는 직장인 모드가 되는 데 까지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분명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하루종일 쫓아다니는 작은 생명체가 지금은 옆에 없는데도, 내 어깨와 다리는 왜 이렇게 무거울까? 아이러니했다.

 그러나 점심시간만큼은 달랐다.

  거의 하루도 마음 편히 밥을 먹어본 적이 없던 지난 1년과는 달랐다. 돌쟁이 아이를 키우며 제 때 밥을 먹는 것은 사치였다. 국은 항상 식었고, 면은 항상 불었으며, 밥은 항상 차가웠다. 그나마도 먹으면 다행이었던 터라, 한동안 나의 점심시간은 아이의 낮잠시간 중이어야 했다. (그래서 아이가 두 시까지 안 자고 버틸 땐 정말 울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내가 원하는 걸,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상태로(그것도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 아주 당연하고 작은 권리나마 되찾은 순간, 나는 몹시 기뻤고 그날은 유독 그 기쁨에 취해있었던 것 같다. 그래, 나는 자유로운 인간이야! 엄마이기 전에 인간이라고! 벅차오르는 기분으로 샐러드를 먹고 산책을 나섰다.

아침마다 새가 지저귀던 그 숲길을 지나 도로변으로 나섰는데, 도로변에 놓여있는 노란 카카오바이크가 눈에 보였다. 그동안 아이와 유모차 산책을 하며 종종 발견했던 자전거였다. '와 이제는 카카오에서 바이크도 만드는구나' (참고 : 카카오바이크는 2019년 도입되었다) 생각하며 한 번 타보고 싶었지만, 시간을 내서 자전거를 타는 건 우동 면굵기의 라면을 먹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살랑살랑 바람도 좋고, 날씨도 좋은데, 자전거나 한 번 타고 갈까? 싶은 마음에 용감하게 자전거 잠금장치를 풀고, QR코드를 인식하고,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를 올렸다. 이게 얼마만의 야외 자전거인지. 전직 스피닝 마니아로서, 새삼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바게트 빵을 앞에 꽂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런 감성으로 한 번 슬슬 달려보는 거야! 하는 마음으로 페달을 밟았다.


뭔가 이상했다. 파르르 돌아가는 가벼운 체인 소리를 기대했는데, 내 귀에 들리는 건 부우웅 하는 둔탁한 모터음이었다. 심지어 페달을 한 바퀴 굴렀는데 나는 이미 2미터 정도를 나아가고 있었다. 두 바퀴 구르면서 나는 카카오바이크가 전기자전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 첫 전기바이크였다. 태생부터 쫄보인 나는 자전거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 속도가 너무 무서워서 계속 브레이크를 잡았고, 우주 최고 길치인 나는 이대로 가다가 길을 잃어 사무실에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멀리 가지도 못했다. 결국 브레이크를 쥔 손이 뻐근해질 때까지 약 5분 정도를 갔다가, 다시 5분 정도를 돌아와서 처음 자전거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본 그곳은 하필 수영장이었다.

사무실에서 5분 거리에 수영장이 있었지 참. 나는 자연스럽게 수영장 안을 기웃거렸다. 마지막으로 수영장에 간 게 언제였더라. 코로나도 발생하기 전이니, 19년이었을 테다.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수영을 다시.. 해볼까?' 그렇게 잠시 내 곁을 떠나 있던 수영은 운명처럼 다시 내 곁으로 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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