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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Oct 29. 2020

남편에게 선물을

남편도 울고 싶다

조리원 퇴실 30분 전.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나


3주간의 조리원 천국이 끝났다. 대체적으로 2주를 예약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남편의 적극 권유로 3주를 예약했다. 만사태평 성격의 나와는 달리 남편은 계획적이고 정보에 빠르다. 맘 카페도 남편의 권유로 가입했고 태아보험, 조리원 예약 등 모두 남편 덕에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어찌어찌됐건 남편은 어떻게든 둘만 남겨지는 시기를 늦추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고, 조리원도 3주, 이후 집으로 돌아와 도움을 청할 산모도우미도 3주를 신청했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부터 산모도우미 이모님이 오시기로 되어있었기에 집으로 돌아온 당일의 육아는 남편과 나 오롯이 둘의 몫이었다. 엄연히 따지면 남편이 8할은 했다. 나는 아직 몸을 추슬러야 할 때였고, 남편은 집으로 돌아온 낮시간부터 다음 날 아침 이모님이 오시기 전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기를 낳는 고생을 내가 했으니 그 정도야 남편이 할 수 있지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에 남편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당연한 일에도 서로에게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을 잊지 말자는 다짐을 그때 했었다.



이모님과의 주중이 지나고 처음으로 돌아온 주말, 남편과 나, 그리고 아기 세 식구만 남겨졌다. 우리는 하루를 3 분할했다. 8시간은 남편이, 또 다른 8시간은 내가, 나머지 8시간은 함께 육아를 담당하는 거다. 문제는 내가 담당한 8시간 사이에 벌어졌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열 번은 더 울었다. 아기가 아니라 내가.



예쁜 우리 딸은 울어도 예쁘다. ps. 예쁨과 육아의 힘듬은 별개다.



남편이 잠들기 위해 방으로 들어간 순간부터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우리 딸은 순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영문을 알 수 없게 세상이 무너져라 울 때가 있다. 물론 세상 모든 신생아들이 그렇고, 역시나 세상 모든 부모가 힘들다.



정신이 없었다. 똥, 오줌, 배가 고파서, 젖이 물고 싶어서와 같은 문제들은 문제만 해결해 주면 이내 울음을 그쳤지만 제일 큰 문제는 잠투정이었다. 잠투정은 달래고 달래도 아기가 마음먹기 전 까지는 울음이 그쳐 지질 않았다.



내가 맡은 시간 내내 잠투정이 계속됐다. 임신 말기부터 아팠던 엉덩이 허리 골반은 아기를 안고 있으니 다시 끊어질 것 같았고 다리가 퉁퉁 부어오면서 저렸다. 유축과 모유수유로 딱딱하게 뭉친 승모근이 바짝 섰고 손목과 무릎이 시큰했다. 아기와 나, 둘만 무인도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아기를 달래느라 밥시간을 놓쳤다. 짬을 내 밥솥에 밥을 안쳤지만 먹을 시간이 없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젖이 차오르면서 가슴이 뭉쳐 젖몸살이 날 것 같아 밥 먹는 시간을 유축에 양보했다. 밥 대신 영양제 한 알을 먹었다.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있지만, 힘들게 밤샌 남편을 내 밥을 차리라며 깨우고 싶지 않았고, 남편의 능숙한 육아실력에 비해 아직은 서툰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도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어떻게든 내가 맡은 시간은 온전히 스스로 해내고 싶었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르고 남편이 잠에서 깼다. 조용히 유축하는 내 모습을 보고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남편은 기분이 어떻냐 물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서럽게 울었다.



울면서 분했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 나 육아 체질인가 봐! 하고 밝게 웃고 싶었는데 서러움과 힘든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우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쨌건 겨우 8시간을 혼자 아기를 봤는데 나머지 16시간 동안 서러움이 북받쳐 열 번은 넘게 울었을 거다. 아기는 남편이 깨니 다시 순둥이 마냥 잠에 들었다.



남편에게 힘든 티란 티는 다 내고 감정을 추스르니 일요일이 왔다. 오늘만큼은 잘 해내야지 결심했고 마음을 강하게 먹으니 아기의 투정은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한결 나아졌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니 시간이 생겼고, 문득 남편은 혼자 아기를 보며 괜찮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남편 혼자 아기를 봤던 시간의 기록들을 살펴봤다.



우리는 육아를 시작하면서 수면, 배변, 투약시간 등 육아과정을 세세히 기록하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했는데(물론 이것도 남편의 제안이었다) 남편이 나에게 바통터치를 할 때 구태여 말로 인수인계를 하지 않고도 기록을 보면 다음 수유시간, 이례사항들을  파악할 수 있는 식이었다.



기록과의 싸움


평소엔 수치만 확인했지만 이번만큼은 남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살폈다. 마음이 짠했다. 남편의 시간도 나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듯이 남편도 아빠가 처음일 터. 아기가 울면 남편도 울고 싶었을 거고 아기가 졸면 그 틈에 잠깐이라도 쪽잠을 자고 싶었을 거다. 남편도 굶주린 배를 채울 시간도 없이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고 허리, 어깨가 굽도록 정성스레 트림을 시켰다. 아기가 분유를 먹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게워내면 내가 그랬듯 마찬가지로 당황해 나를 깨우고 싶었을 테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배려했겠지 생각하니 내가 열 번도 넘게 울 때 본인은 얼마나 속으로 울음을 삼켰을까 안쓰러웠다.



출산을 하니 고생했다며 친정, 시댁, 친구들, 지인들 모두 산모인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아무도 선물을 건네지 않는 남편을 위해, 앞으로 고생할 남편을 위해 남편을 위한 선물을 해야겠다.




불과 1년전 남편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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