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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Nov 06. 2020

I Feel PRETTY!

자존감과 합리화, 그 중간 어디쯤

승준생을 코칭하며 ‘자존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승무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많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외적 요건들이 평가되는 국내 서비스 업계 특성 때문인지, 내가 만나온 승준생들 중 본인의 외모가 승무원이 되기에 부족하진 않은지 걱정하지 않는 친구는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

(승무원으로 근무해보니 막상 필요하다고 느낀 역량은 외모가 아닌 체력과 말솜씨.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고 모든 승무원들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예쁘고 잘생겼다고 해서 일 잘하고 상사에게 좋은 평가를 받진 않으니 외모가 훌륭한 승무원의 1순위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엔 많은 승무원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러니 여러 평가요소 중 외적인 면에만 매달리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면 나로선 안타깝기만 하다.)



면접에서 탈락을 거듭하는 학생들은 탈락 이유를 대부분 이미지에서 찾으려고 했다. 수업 날이면 그전에 없던 쌍꺼풀이 생기는 친구도 있었고 그 아프다는 양악, 콧대 수술을 하느라 한 동안 수업을 빠지는 학생도 있었다. 필러, 보톡스 같은 시술은 일도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성형수술이 승무원 이미지를 만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미지는 바른 자세에서 나오는 당당함, 건강한 미소에서 엿보이는 건강한 마음,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지원자의 됨됨이와 같은 것들이 결정한다. 그러니 학생들이 성형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때면 100에 99는 반대하는 편이다. 듣고 싶었던 대답은 아니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형을 고수하는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답은 이렇다.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이 승무원 수백을 수술했는데 저 같은 외모의 승무원은 없었대요.’



한숨이 나온다. 그럼 난 왜 우리 학생 같은 외모의 승무원을 너무도 많이 봤을까. 돈을 벌려 예쁘기만 한 학생들을 부자연스러움의 전형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화가 솟구친다. 하지만 선생님도 말린 성형 때문에 면접에서 탈락했다고 느끼는 것이 더 큰 트라우마를 만들테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편이 좋다.



코칭을 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건 내가 승무원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학생들의 동경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동기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얼마나 코웃음을 치던지. 승무원들 중 정말 출중해서 여신이다, 할 만한 승무원들은 몇 되지 않는다. 물론 직업 특성상 대부분 외모가 깔끔하긴 하지만 엄청난 미인이 아닌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다.

승무원시절.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몇 장 없는 유물.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요인은 너무나 많다. 누군가는 주위 사람들보다 돈을 못 벌 때, 누군가는 주변 사람들보다 외모가 뒤떨어진다고 생각될 때, 누군가는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할 때. 결국 비교, 자기 비하, 결핍과 같은 단어들이 등장한다.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자존감이 낮을 때도 있고, 자존감이 낮다고 느끼는 사람이 반대로 자존감이 실제로는 높은 단단한 사람일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심리상담을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상담사분이 해 주신 말씀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본인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씀이셨는데 백프로 동의한다.



나도 승무원 준비생 시절 승무원은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소문을 들었던 터. 그 소문에 갈대같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참 많이도 스스로를 다스렸다. 나는 인형같이 예쁘지도 않고 눈이 크거나 코가 오똑하거나 입술이 앵두 같지도 않다. 얼굴이 주먹만 하지도 않다. 하지만 꼭 승무원이 되고 싶었기에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합리화’. 부정적인 어감이 없진 않지만, 자기암시라고 생각한다면 나쁠 것도 없다. 예를 들면,



‘2만 명 중에 100명이 뽑히지만, 외모로 치면 내가 백등 안에 들진 못한다. 하지만 합격자들을 보면 외모 1등부터 100등까지 순서대로 뽑히진 않더라. 수 십 명의 미스코리아, 00 아가씨가 지원하지만 막상 합격자들 틈엔 한 두 명뿐이다.’


‘이미 면접관은 날 좋아할 준비가 됐는데 나 혼자 쫄아서 매력 없는 모습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면접관은 나를 좋아한다, 나를 좋아한다, 나를 뽑는다.’


‘내가 무조건 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내가 안 된다는  법도 없잖아?’


‘그 회사 승무원이 7천 명이라는데, 내 자리 하나가 없겠어?’



초조할 시간을 합리화, 자기암시로 채우는 것인데, 호흡을 크게 하고 미소를 띠며 이런 말들을 되새길 때면 마치 내가 벌써 승무원이 된 것 만 같아 걸음걸이도 마음의 무게도 가벼워졌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승무원에게는 겸손함이 미덕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자존감이 바닥칠 수 있는 시기에 절실했던 건 겸손함 보단 마음의 안정 내지는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학생들이 끝없는 취업전쟁에 뛰어들어 전사하기 직전이면 이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본인이 합격할 수밖에 없는 한 문장을 만들라거나, 승무원이 아니더라도 본인이 가치 있는 사람인 이유를 찾아보라거나. 힘이 되었을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이야기가 되었을지 알지 못하지만 승무원이 되지 못한다고 해서 자존감이 바닥 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노력 50, 합리화와 자기암시 50 덕분에 승무원이 되었다. 그 외에도 내가 이룬 모든 크고 작은 성과 아래엔 합리화와 자기암시가 자리 잡고 있는 편이다. 나도 걱정할 땐 걱정하고 타인의 평가에 소심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걸 오래 끌어안고 있을 이유는 없다. 빨리 털어내고 스스로에게 집중할수록 내가 원하는 것에 더 빨리 가까워지는 것을 매번 느꼈기 때문이다.



...... 그래서 내가 결국 하고 싶은 말. 내가 보기에 너희들은 너무너무 예쁘고 잘생겼는데. 그게 왜 내 눈에만 보이는 거니?


영화 i feel pretty를 보고 SNS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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