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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Jun 22. 2021

엄마가 필요 없는 어른

내 맘대로 너를 이 세상에 불렀으니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지극히 현재에만 집중하는  타입이라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골치 아픈 걱정도 하지 않을뿐더러,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은 뜨문뜨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생각하지도 못한 기억들이 문뜩, 또 번뜩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을 스친다. 육아 덕분이다. 대개는 어린 시절의 나는 이랬으니, 우리 딸은 이렇게 키워야지 내지는 이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하는 것들이다.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나라는 사람에게 없던 습관이다.




그중 매일 되새기는 다짐이 있다면 딸에게 <부담> 주는 엄마가 되지 말자는 것이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기대>를  갖지 않기란 참 힘들다. 한데 기대라는 설레는 단어가 부담이라는 부정적 감정과 이리도 쉽게 연결되니 더 말해 뭐할까.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더 할 수 있는 아이인데. 내가 더 북돋아주지 않아서 화수분처럼 터질 잠재력이 꽃 피기는 커녕 뿌리도 내리지 못하면 어쩌나.'




이런 우려가 아이를 재촉하게 되고, 아이는 부담감에 과속하게 된다. 본인 능력 밖의 일을 해내려 스트레스를 받고, 부모의 기대에 실망을 안기기 싫어 어쩌면 거짓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 일정 부분 그랬다. 나의 잠재력은 중학생 시절 폭발했는데 성적이 좋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다른 부모의 견제대상이 되니 가뜩이나 교육에 열정적이었던 엄마는 흥분감에 못 이겨 학원이란 학원은 다 끊고 대회란 대회는 다 내보냈다.




쌓여가는 미션들을 해결할 시간이 없었던 나는 편법을 택했다. 답지를 베껴 그럴듯하게 숙제를 해내기도 했고 성적표를 숨기기도 했다. 편법은 쉬운 길이다. 쉬운 길로 들어선 나는 어려운 길로 발길을 돌리기 싫었다. 선택은 내가 했으니 부모탓을 하는 것이 아니다. 참고로 나는 지금의 인생에 매우 만족하고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부모님의 역할이 9할이었다고 생각하니 이 글은 부모님의 교육법을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말처럼 날뛰는 나의 고삐를 끝까지 잡지 못해 결국 빠르게 나를 놓을 수밖에 없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하지만 그 시절 나의 엄마가 나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었더라면, 재촉하지 않고 부담 주지 않고 기다림의 미학을 발휘해 주었더라면. 적정한 때 나의 한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었다면 그랬더라면 나는 좀 더 성장하지 않았을까.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려 애쓰는 사람도 보았다. 안쓰럽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까지 딸만 바라보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으며, 딸이 모르는 나만의 세계가 있는 엄마로 늙고 싶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는 엄마가 될 테다. 내 딸도 독립적으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스스로의 기준과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




아이를 정성 들여 키우는 이유는 평생 아이의 인생에 간섭하기 위함이 아니며, 그 목적은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시킴에 있다. 엄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아기를 엄마가 필요 없는 어른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그래서 아이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세가 부모에겐 필요하다. 사람의 한계를 측정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래도 부모는 그 불가능함을 해내야 한다. 부모 됨은 어렵다.




아이를 키우며 많은 생각들을 한다. 기대가 부담이 되지 않게 해야지, 기다려줘야지, 자식이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해야지.

그 외에도 감정 섞인 체벌은 하지 않는다든지, 틀에 박힌 사고에 갇히지 않게 교육한다든지. 주장하되 배려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든지. 알 수록 모르는 것은 더 많아지니 익을수록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든지.

육아라는 것이 무 자르듯 경계를 그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흑백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적정선을 찾는 건 정말이지 어렵다.




좋아하는 가수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는 아이를 이 세상으로 강제 소환했으니 행복한 어른이 되는 방법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는 말을 한다.

'내가 언제 태어나게 해달라고 했어?!'

딸의 사춘기 무렵 이런 앙칼진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모진 말이다. 하지만 그 가수의 말에 따르면 하나도 틀린 게 없는 말일 거다. 동의한다.




육퇴 후 잠깐의 짬을 내어 이 글을 쓴다. 부족한 나를 엄마라고 살을 붙이고 곤히 잠든 딸이 애틋하다. 조용히 말해주어야겠다.

", 나는 허락도 받지 않고  세상에 너를 불렀구나. 미안한 마음이야. 하지만 앞으로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있게 엄마가 애쓸게. 엄마가 필요 없는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해주렴."

육퇴! 내일도 행복한 어른이 되는 법을 가르쳐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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