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잘 사 주는 멋진 선배
올 초 우리 신랑은 한창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푹 빠져있었다. 어쩜 저렇게 장사할 수 있을까? 우와 저렇게 주방이고 사람이고 속속들이 들추어내도 괜찮을까? 하면서 지난 방송 분까지도 꼼꼼하게 챙겨보곤 했다. 그리고 종종 백종원의 흉내까지 내주시곤 했다.
"그러츄~~"
그렇게 백종원의 이야기로 출근길의 시간을 채우던 중 무엇인가 깨달은 듯 신랑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낸다.
"골목식당을 보면 비단, 저 얘기가 식당만의 얘기는 아닌 거 같아."
승진 심사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신랑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그 식당들처럼 자신에 대해서도 한창 품평을 하고 무엇이든 다 들추어내진 다고 했다. 승진 심사의 문턱에 있다면 누구든 속속들이 까발려지기 마련인데,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러면서 유머러스한 우리 신랑답게 심각한 그 이야기도 그만의 특유한 풍자적 희극으로 풀어낸다.
A: "OO 씨, 사람 참 재미있고 괜찮지."
B: "그럼 너 같이 일할래?"
A: "음, 글쎄"
이게 자기가 추측하는 자신의 평가라며 웃어 보인다. 거기에 난 또 아주 이성적으로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고 이렇게 떠든다.
"그러니깐, 집에서부터 잘해보면 어떨까?"
우리 신랑님은 또 그 한 마디를 이렇게 받아치는 유쾌함이 넘치는 사람이다.
"OO선배, 사람 참 괜찮지? 너 같이 살래? 글쎄"
난 완전 박장대소하며 맞장구를 친다.
"맞아 맞아. 진짜 오빠가 그냥 OO회사 다니는 친한 선배였으면 좋겠다."
그렇다. 여전히 우리 신랑이 결혼하기 전, 아니 우리가 사귀기 전 친한 앞방 실험실 선배였다면 하고 생각해본다. '선배, 오늘 나 정말 스트레스받는데 술 한잔 사줄래요?'라고 말하면 열일 제쳐두고 와서 과천에 맛있는 갈매기 집이 있다며 데리 갔을 거다. 열심히 고기 구워 소금에 찍어 먹으면 제맛이라고 했을 그런 자상한 선배였을 거다. 다음엔 옆에 조개찜 집이 있는데 거기는 더 일품이라며 다음에 오면 거기 가서 사줄게, 하는 그런 선배였을 거다.
근처에 두고 속상할 때, 즐거울 때 찾아갈 수 있는 그런 편한 선배였음 더 좋았겠을 우리 신랑님이다.
그쯤, 5일간의 설 명절을 지내러 시댁에 갔다. 설 명절을 다 보내고도 휴가를 냈다며 애들과 함께 놀자는 신랑과 아이들을 두고 나는 출근을 했다. 그 시간 나는 드디어 회사로 탈출한 기분을 느꼈다. 이래서 내가 회사를 못 관둔다며 회사 다님을 정당화했었다.
이미 신경성 위염까지 얻고 명절 연휴 다음날까지 아이와 신랑의 뒷바라지를 하기엔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치듯 침대에서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끌고 회사를 나갔던 터라 그 마음이 당연했다. 예전엔 명절이 지나고 고속도로에 들어섬과 동시에 내 손등 위에 손을 포개고, 정말 고생했다고 한마디만 해줘도 마음이 쑥 내려가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말을 들어 본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철없는 내 남편, 내 반쪽이라기엔 너무 거대한 몸집을 가진 그 사람. 시댁에 가자마자 TV를 켜고 누워 2일간 꼼짝도 안 하시고 하는 말이 "너~~무 좋다."였다.
이런 철없는 신랑이어도 퇴근할 때 맥주 좀 사 와요라고 하면 흔쾌히 4캔에 만원 하는 편의점 맥주를 넉넉히 8캔 사 온다. 애들이 잠들 때까지 맥주는 김치냉장고 안에서 시원하게 숙성된다. 한 침대에 기대어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시청하며 시원해진 맥주를 반찬으로 쓸 진미채와 함께 마신다. 8캔 맥주는 이렇게 앞서 더워진 늦은 봄의 밤에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더 이상 '술 잘 사 주는 멋진 선배'는 없어졌지만, '술 잘 사 오는 통 큰 신랑'이 남았다. 물론 먼저 가봤던 맛집이 있다면 언제든 가족을 모두 데리고 가서 먹여주고 싶어 하는 아직은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기에 항상 같이 침대에 기대어 맥주 캔을 부딪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