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를 인정한다는 것
사람의 성격, 기질 등에 대해 공부하기 전에 나란 사람에 대해 먼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성실함, 책임감, 완벽함, 계획적, 이성적, 부지런, 정직함, 쿨함...
나를 정의해본 단어들이다. 난 태어날 때부터 성실함을 몸에 지니고 태어나야겠다. 껌딱지처럼.. 왜냐고? 내 이름이 성실애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성실애'라는 이름 덕에 '이름값 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살았다. 성실이 어떤 뜻인지도 모르던 그 철부지 시절,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빠르게 성실이라는 잣대속에서 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름 탓이다.
그 성실이라는 뜻에는 내가 정의한 나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것 같다. 성실의 한자 표현은 誠實(정성 성, 열매 실)이다. 사전 풀이는 정성스럽고 참됨. 일본의 칸트 연구자들 158명이 집필하여 2009년 출간된 <칸트 사전>에 성실이라는 개념이 정의되어 있다. 내가 찾아본 성실이라는 의미 중 이제껏 내가 생각하고 살아온 이상적 성실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조금은 어려운 말들로 설명되고 있지만, 딱 와 닿은 한 줄은 이것이다.
"모든 언명에서 성실하다는 것은 신성한 이성의 명령이며, 어떠한 사정에 의해서도 제한되지 않고 모든 상황에서 타당한 무제약적 의무라고 생각되어야만 한다."
조금 더 성격이론에 입각해서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결국 성실성은 곧 진실성으로 풀이된다. 곧 참되고 바른 성질이나 품성.
그랬다. 조금도 모나지 않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학교에서도 모범생인 그런 아이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남에게 피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사람은 진실로 대했다. 맡은 일은 책임을 다했고, 주어진 역할에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주어지는 역할은 늘어난다. 온전히 나만을 생각하고 딸이라는 역할, 학생이라는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는 때가 있었다. 반면에 이제는 아내, 엄마, 며느리라는 가족 역할에 직장인이라는 사회적 지위까지 추가되었다. 모든 역할에 충실하며 나에게 기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부흥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나라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나란 사람은 40년 가까이를 살았다. 내가 가둔 성실이라는 잣대에 갇혀서 빈틈없이 살았다. 그래서 좋았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좋아하고 인정해줬다. 어떤 일을 하든 믿어주는 그런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더 꾸준히, 열심히 나를 다지고 또 다졌다.
'성실애'라는 이름값을 하면서 산다는 건, 나에겐 당연한 일이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마음이 편했다. 그 이름의 짐이 좀 무겁다 생각이 든 적도 있다. 하지만 내 이름이 '성실애'가 아니었다고 해서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기질인 성실성이 발휘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되진 않는다. 그냥 이건 나란 사람이다.
여태껏 그런 줄로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