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말하는 아이
"엄마, 이거 카드놀이하자."
저녁상을 치우고 있는데 카드 상자를 들고 와서는 놀자고 조르는 작은 아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얼른 하던 일을 마치고 아이와 마주 보고 앉아서 카드를 탁자 위에 펼쳤다.
꿈모닝스쿨 선생님들과 함께 하면서 솔라리움이라는 사진카드를 알게 되었다. 50장의 사진을 가지고 질문에 따라 카드를 고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일주일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감정은 어땠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때그때 질문도 다르고 선택하는 카드도 다르다. 똑같은 사진이어도 사람마다 상황마다 부여하는 의미 또한 달라진다.
아이가 이 사진의 의미를 알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생각으로 카드를 주문했다. 카드를 보자마자 아이들은 어떤 보드게임용 카드라도 만난 듯 관심을 가졌다. 그렇게 바로 방바닥에 카드를 펼쳐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 있는 그림들 중에서 오늘 나의 마음을 표현한 그림을 찾아볼까?"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해 어떻게 찾아?라는 표정으로 카드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내가 먼저 카드를 한 장 골랐다. 시계가 잔뜩 그려져 있는 그림이다.
"엄마는 오늘 너무 바빴어, 이 시곗바늘처럼 말이야."
그러자 너무 쉬운 질문이었다는 듯이 작은 아이는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가 있는 사진을, 큰 아이는 한 상 가득 밥이 차려져 있는 사진을 골랐다. 유치원에서 물놀이를 했다는 작은 아이는 그 사진 속 아이의 웃음처럼 재미있었다고 한다. 큰 아이는 요새 한창 크려는지 먹을 것을 유독 많이 찾는데, 이날도 배가 고팠다고 밥을 많이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 또 문제 내봐"
"음... 그럼 이번 여름 방학 때 뭐 하고 싶은지 찾아볼까?"
작은 아이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골랐다. 그리고 나는 여행가방 더미를 골랐다. 여행을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그러자 큰아이는 자기가 골랐던 그림을 내려놓더니 열쇠가 잔뜩 있는 그림을 골랐다. 호텔 방 키와 여행가방을 열 수 있는 열쇠라고 한다. 열쇠를 들고 같이 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네 우리는 꼭 같이 가야겠다."
이런 질문들이 몇 개 더 오가고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카드놀이는 매주 하자는 약속을 하고는 끝을 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 작은 아이의 조름으로 다시 카드를 꺼내 들게 된 것이다. 아이는 이제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마다 이 카드게임을 하자고 한다. 그러겠노라 약속은 했지만 매번 어떤 문제를 내야 할지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질문거리가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이는 여러 문제를 내기를 요구했다.
사실 우리 작은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다. 자신이 생각하는 답이 질문의 정답이 맞다고 확신하기 전에는 절대로 손을 들기 않는다. 질 것 같은 게임은 시작도 안 한다. 물론 밤을 새워서라도 끝까지 연습을 하고 난 뒤에 게임을 요청한다. 그런 아이가 이 카드게임에 이렇게나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 엄마로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처음엔 엄마인 내가 문제 내기만을 요구했지만, 조금 지나니 자신이 문제를 내겠다고 나섰다. 유치원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방학을 맞이하여 캐나다에 2달을 다녀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이런 문제를 냈다.
"OO이가 캐나다에서 돌아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그러고는 카드를 한 참 둘러보더니 두장의 카드를 집어 든다.
"잔디밭에서 막 뛰어놀고 싶어, 그리고 숨바꼭질도 하고 싶어."
우리 아이는 두 달 동안 마음속에 이 카드 두 개를 두고 친구가 없는 빈자리를 채울 것 같다. 힘든 일은 참고 견디고 싸움보다는 양보가 편한 아이, 눈치를 많이 살피느라 자신의 감정은 살필 줄 모르는 나를 쏙 빼닮은 우리 아이의 마음을 이렇게 작은 카드 몇 장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마음이 궁금해서 소심하게 책 속의 주인공에 기대어 이야기하던 이 엄마는 이제 기댈 곳이 하나 더 생겼다. 이 작은 카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