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미덕 시나리오
"엄마 정말 그래도 돼? 안 혼낼 거야?"
무릉계곡을 만나 신나 하는 아이에게 빨리 들어가 보라고, 옷 젖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자 큰 아이가 내 턱을 올려다보며 한 말이다. 내심 가슴이 콕 찔렸다.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됨과 동시에 6박 7일의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긴 여행이기에 설레었다. 하지만 물놀이 용품이며 입을 것, 먹을 것을 챙기는 것만으로 기진맥진한 상태로 여행길에 올랐다.
일찍 출발한 탓에 강원도로 향하는 길은 잠으로 시작했다. 한껏 들떠있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다.
비구름이 걷히고 뭉게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과 산에서 피어오르는 안개 사이를 지날 즈음 눈을 뜨니 앞에 커다란 풍차가 돌고 있었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인 대관령 목장의 풍력발전기였다. 목장의 정상에서 사진도 찍고 바람도 맞는 사이 점심이 되었다. 아이들이 고대하던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곤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로 이동하는 길은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동해시로 가는 길, 문득 올해 초 해돋이를 보러 갔던 망상해수욕장이 떠올랐고 핸들을 꺾었다. 바다에 다다르자 점심을 먹고 노곤함에 잠들었던 아이들과 남편이 깨어났다. 그리고는 곧장 바다로 내 달렸다. 나도 들뜬 마음에 함께 바다로 향했지만 아이들의 옷을 갈아 입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여기 있어봐, 내가 수영복 가지고 올게"
아주 빠른 걸음으로 백사장에 까치발을 꽂아가며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내친김에 수영복을 비롯하여 물놀이 용품까지 챙겨서 어깨에 메고는 바다로 다시 돌아왔다. 남편과 아이들을 찾아 이름을 불렀다. 옷 갈아입는 곳으로 오도록 손짓을 했다. 내 눈 앞에 나타난 세 부자를 보는 순간 나는 소리부터 질렀다.
"아니, 수영복 가지고 온다고 했잖아. 그 잠깐 사이를 못 참고 옷을 적시면 어떡해. 나참... 애나 어른이나 똑같아가지고는..."
"그냥 놀아. 이미 다 젖었네 모. 아니다 목 하고 팔 다 타니깐 갈아입어. 아니다 에휴. 그냥 놀아 나도 몰라."
나의 반응에 바다를 만나 신났던 아이들의 얼굴은 말라버린 모래사장의 모래처럼 뜨거워져갔다. 남편은 얼른 수영복을 들고 간이 탈의실로 들어갔고, 작은 아이도 덩달아 아빠를 따라 들어갔다. 나와 밖에 서 있었던 큰 아이만이 어찌할 줄 몰라하며 서 있었다.
"엄마 그냥 놀아? 갈아 입어?"
"그걸 조금 못 참아가지고, 애는 그렇다 치고 아빠는 왜 그랬다니? 정말 생각이 없어."
결국 반팔, 반바지로 놀기에는 햇빛이 너무 뜨거웠기에 래시가드로 옷을 갈아입는 것이 좋겠다는 나의 결정에 의해 큰 아이도 옷을 갈아입었다. 이미 젖은 옷은 모래가 잔뜩 묻은 채 탈의실 안에 놓여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다시 한번 속에서 화가 치밀었지만, 이미 세 남자는 바다로 뛰어 간 상태였기에 화를 쏟아 낼 대상이 없었다.
다시 돌아가 [사려]의 미덕을 발휘한다면...
옷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이미 바닷물에 옷이 젖어버린 세 부자가 보였다. 힘들게 수영복을 들고 왔는데 생각 없이 입은 옷 그대로 바다에 뛰어든 이 남자들에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잠깐 돌아서서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돌아본 세 남자의 얼굴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바다 표면만큼이나 반짝반짝 인다. 다시 돌아온 엄마에게 바닷물이 짜다느니, 그렇게 춥지 않다느니 엄마도 빨리 들어가자고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쏟아낸다. 그 순간 이미 젖은 옷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바로 숙소에 들어가서 빨아 말리면 그만이다.
"벌써 들어가 볼 만큼 바다가 좋았어? 그래도 짧은 옷으로 놀기에는 햇볕이 너무 강하니깐 긴 래시가드로 갈아입자. 이미 몸이 젖어서 입기 힘들 테니 자기가 애들 좀 도와주고요."
[사려]의 미덕을 깨우니 모두가 행복하다.
사려 :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
[2019. 8. 12]
나는 사려 깊은 사람입니다.
나는 내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항상 염두에 둡니다.
나는 사려 깊게 행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