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키다리 아저씨>의 주제가가 흘러나올 때마다 보였던 장면이 또렷하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고아원 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햇빛에 부신 눈을 찡긋하는 주디의 모습과 길쭉한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길게 드리워진 신사 모습의 그림자. 하지만 이런 반전이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한 채 이 책을 읽었기에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나의 단기적 기억력 덕을 톡톡히 본다고 좋게 생각한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백번도 넘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다음 스토리를 기대하며 본다는 특별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제일 먼저 쓰고 싶었던 것이 이 반전에 대한 놀라움이지만,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스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조심스러워진다.
<키다리 아저씨>는 진 웹스터가 1912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여성에 대한 평등함도 결부되고 더구나 신분의 격차도 있던 그 시절에 고아원에 살던 제루샤 애벗에게 후원자가 나타난다. 애벗의 문학적 소질을 발견한 후원가는 애벗을 대학에 보내주고 그에 대한 대가로 한 달에 한 번 감사 편지를 보내도록 한다. 이 소설의 제1부는 ‘우울한 수요일’로 고아원에서 보내는 어둡고 힘든 생활이 그려져 있다. 제2부는 ‘제루샤 애벗 양이 키다리 아저씨 스미스 씨에게 보내는 편지들’로 애벗이 지내고 있는 대학에서의 일상과 친구들과의 이야기 등 애벗의 성장과 우정이 편지 형식으로 쓰여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앞전에 읽은 <빨강머리 앤>과 자연스레 비교하며 읽게 되었다. 똑같이 어릴 적 만화로 보아서 더욱 친숙하며 둘 다 고아라는 공통점 때문인 것 같다. 앤도 주디도. 참! 주디는 제루샤 애벗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앤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지만 제루샤 애벗은 고아원 원장님이 전화번호부와 묘비명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그래서 애벗이 직접 지은 주디라는 이름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파란 눈동자에 작고 귀엽고,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아 제멋대로이며, 아무런 걱정 없이 자기 인생을 마음껏 살아가는 그런 여자에게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이 정말 그런 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앤도 주디도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지키고 만들어 간다. 고아이기는 하지만 이 둘은 뒤를 받쳐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앤은 풍족하진 않지만 마음을 다해 길러주는 커스버트 남매가 있었다면 주디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후원을 받고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나간다. 하지만 주디는 그렇게 받은 금전적 혜택은 꼭 갚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글을 쓰고 결국 키다리 아저씨에게 작가가 되어 처음 받은 원고료 1,000달러를 보낸다. 물론 주디도 돈이 아닌 마음을 다해 주디를 사랑해주는 아저씨가 있었지만, 주디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어쩌면 주디는 앤 보다는 훨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조금은 어른스러운 시야에서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삶에 대한 기대와 행복이 묻어있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운 고아의 자존심이 깊게 새겨져 있음이 느껴진다. 어릴 적 한 번쯤은 꿈꿔 본 왕자님을 만난 그런 기분이겠지만,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고 그 때문에 저비 도련님의 청혼도 거절하게 되니 말이다. 그래도 그런 속마음을 편지로나마 내보일 수 있었던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기에 얼마나 다행인지...... 어쩌면 키다리 아저씨가 한통의 답장조차 보내지 않았던 것이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거나 불만을 이야기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정작 그것의 해결책을 바라서가 아니다. 그냥 묵묵히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기를 바랄 뿐. 맞장구는 없었지만 묵묵히 읽어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기에 주디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문득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이 편지들을 다시 읽어봐야 갰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 아이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도 조용히 들어줄 수 있는 인내심과 기다림을 키다리 아저씨에게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조용히 사랑하고 기다리고 바라만보다 아프지만 결국 이루어지는 그런 사랑의 결실이 우리 사이에도 생기지 않을까? 무한으로 받기만 하면서 동경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 엄마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어떨까?
결국 연애편지로 끝나게 되는 이 소설의 뒷얘기가 무척 궁금했다. 작가 진 웹스터의 정보를 찾다가 <키다리 아저씨 그 후 이야기>라는 소설이 <키다리 아저씨>의 속편으로 나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키다리 아저씨>의 꼬리 물기 독서로는 이 책이 될 것 같다. 마지막 부분을 읽고 두근거리던 설렘으로 오랜만에 손 편지 써서 남편 가방 속에 몰래 숨겨 두었다는......
진 웹스터는 출판업자인 아버지(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출판)와 마크 트웨인의 조카인 어머니 사이에서 187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중산층의 집안에서 돈과 명예, 지적인 혜택까지 누리며 살아왔다. 배서 대학에서 영문학과 경제학을 전공하며 진보적인 교육을 받았고 정치와 사회에도 적극 참여하도록 독려받았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과 출발점이 다른 이들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되면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그녀는 실제로도 고아원, 교도소의 복지 개선에 앞장서는 일을 했다. 여성 참정권자이기도 했던 그녀가 진이라는 이름 때문에 남자로 오해받고 배심원으로 불려 갔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어 분해했다고 한다. <키다리 아저씨>는 이런 진의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 아닐까? 아무 조건 없이 베풀어지는 내용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그 역경을 딛고 작가가 되어 후원자에게 받은 돈을 갚는 주디의 모습이 흡사 작가 진의 신념이지 않나 싶다. 당시의 ‘상류층’ 여성으로는 드물게 진 또한 직접 돈을 벌었다고 하니 말이다.
이제 책을 읽으면 작가나 그 책이 쓰인 배경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작가의 성장 과정과 시대상을 알게 되면 그 책을 읽을 때, 남다른 시각에서 읽어 볼 수 있게 되니 말이다. 한 번은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읽고, 두 번째는 그 배경을 알고 읽어보면 또 다른 책 두 권을 읽는 듯 한 느낌을 갖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이 책을 키다리 아저씨 저비 도련님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읽어 볼 예정이다. (결국 스포 하고 말았다.)
“엄마, 그래서 그 여자애는 그 신사에게 돈을 받고 대학에 갔어?”
딱 제1부 ‘우울한 수요일’만 읽어본 아이는 책의 뒤표지를 덮고 있는 나에게 묻는다. 대학에 갔다고는 말해줬지만, 아이가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때까지 결말은 비밀이다. 다만 궁금증을 주기 위해 굉장한 반전이 있다고만 운을 띄워본다.
<참고도서>
1. 키다리 아저씨(Daddy Long Legs), 진 웹스터, 김지혁 일러스트, 김양미 옮김, 인디고
2. [네이버 지식백과] 진 웹스터 [Jean Webster] (해외저자사전, 201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