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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Oct 17. 2019

작가의 삶 속으로 푹 빠져 본 <걸리버 여행기>

소인국과 거인국만 기억한다면?

작년 가을 아이와 함께 고전 읽기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고른 것이  <걸리버 여행기>였다. 모험과 판타지를 좋아하는 우리 아들에게 딱이다 싶었다. 소인국과 거인국을 여행한 걸리버의 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책의 내용에는 하늘을 나는 섬이나 말의 나라 등 이전에 알지 못했던 다른 이야기가 또 있었다. 아동용 문고인 미래엔아이세움의 <걸리버 여행기>로 4부로 나누어진 이야기를 하루에 한 부씩 나흘 동안 읽었다. 예상대로 아이는 흥미진진해했고, 나 또한 단편적으로만 기억하고 있던 이야기들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읽었다.     

얼마 전 제대로 된 걸리버 여행기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들었다.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걸리버 여행기> 두 권을 찾아 읽었다. 고전 읽기를 시작하면서 원작에 충실한 책을 찾다 보니 이제는 버릇처럼 옮긴이가 다른 두 권 이상의 책을 찾아 읽게 된다. 내용은 같지만 표현하는 문체가 달라 전달하는 내용의 뉘앙스도 달리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른 책보다도 <걸리버 여행기>는 특히 더 그러함을 느꼈다. 고전을 읽으면서 더욱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옮겨놓은 글이 아닌 원작 그대로 나의 느낌대로 읽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써 내려간 소설이기에 읽는 내내 주인공인 걸리버와 작가인 조너선 스위프트가 동일인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다. 이야기의 중간중간에 이 책을 왜, 어떤 방식으로 쓰고 있는지에 대한 걸리버의 설명과 함께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여행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착각은 필수인 것 같다. 모험에 숨겨진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극찬을 받고 있는 이 책에 대해 나는 작가와 주인공 걸리버를 한 인물로 착각하게 만들어 버린 것에 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걸리버 여행기>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4부로 되어 있다. 1부는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는 소인국에 대한 이야기이다. 걸리버가 처음 도착한 소인국의 이름은 릴리푸트이며 달걀을 세로로 깨는지, 가로로 깨야하는지에 대한 의견 차이로 전쟁이 일어난 블레푸스크라는 나라가 있다. 걸리버는 릴리푸트의 편에서 블레푸스크와의 전쟁에서 승리거두지만, 여러 모함으로 인해 블레푸스크로 도망갔다가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2부는 거인국 브로브딩낙에서의 이야기이다. 농부의 손에 들어간 걸리버는 구경거리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가 왕비에게 팔리게 된다. 브로브딩낙의 왕은 아주 현명한 왕으로 걸리버에게 영국의 법과 제도에 대한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보인다. 하지만 부패로 인해 얼룩진 제도와 악에 대해 영국 사람들을 아주 고약한 벌레들이라고 규정해버린다.      


3부는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에서의 이야기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델이 되었다는 이 섬은 생각에 깊이 빠져버려 입이나 귀 때리기 꾼을 하인으로 둔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이들이 통치하는 발리바리라는 섬도 있는데, 이 섬에는 말도 안 되는 연구를 진행하는 거대한 연구소가 있다. 그리고 ‘마법사의 섬’ 글럽더브드립에서는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마법을 부린다. 그곳에서 걸리버는 역사적 업적이 있는 위대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비행에 대해서 알게 된다. 스트럴드브러그에서는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영생에 대한 욕구를 버리게 된다. 걸리버는 일본을 통해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마지막 4부에서는 앞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사람이 아닌 이성을 가진 말 후이넘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을 했지만 야비한 동물로 그려지는 야후도 만나게 된다. 후이넘들은 걸리버를 야후로 생각한다. 걸리버는 후이넘들과 함께 사는 3년의 시간 동안 그들을 존경하게 되고 결국 야후와 동일한 인간들을 경멸하게 된다. 강제로 집으로 돌아오게 된 걸리버는 역겨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한 채 말 두필을 구해 그들과 함께 여생을 보낸다.     

이 <걸리버 여행기>는 짧은 줄거리와 에피소드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사회나 인간에 대한 풍자는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삶과 그가 살았던 영국과 아일랜드의 시대상을 알고 책을 접하면 더욱 작가의 의도와 세세한 설명들을 조금 더 직설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탐욕과 권력, 욕심, 부정 등으로 인해 인간만이 가진 이성이 타락하고 있음에 대한 적나라한 인간 비판의 목소리를 소설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사실 나는 단편적인 역사적 지식과 인간에 대한 부족한 이해로 인해 그냥 판타지를 보는 듯한 신기한 이야기로만 읽었다. 하지만 작품 해설, 작품의 배경 그리고 작가의 생애에 대한 설명글을 읽으며 다시 본 <걸리버 여행기>는 단순한 모험적 요소가 가미된 풍자적 소설로만 볼 수는 없었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가난하진 않았지만 유복자로 태어나 엄마의 보살핌이 없이 삼촌의 손에 길러졌다. <걸리버 여행기> 내용에는 여성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이 자주 등장하는데 해설자들은 엄마의 보호를 받지 못한 어릴 적 트라우마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한다. 나 또한 거인 여인들의 몸에서 나는 고약한 악취라던가 부정을 저지르는 여인들의 이야기 등을 읽을 때 걸리버를 만나 왜 그렇게 비하하는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 따져 묻고 싶었다. 


스위프트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지만 영국과 아일랜드를 오고 가며 살았다. 영국의 식민지에 있었던 아일랜드를 위해 영국을 공격하는 악의적인 글을 써서 스위프트는 아일랜드인의 영웅이 되기도 한다. 이런 부분은 릴리푸트에서 걸리버가 블레푸스쿠를 점령하여 속국으로 만드는 것을 거절하는 부분을 빌어서 나타내고 있다. 

소설가이면서 성직자였던 스위프트는 당시 정치계의 거물 W. 템플경의 비서 생활을 할 만큼 정계에도 야심을 품었다. 외과의사로 선장으로 설명되고 있는 걸리버가 영국에 대한 정치나 문화에 대해 그토록 세세하게 설명할 수 있었던 이유라 할 수 있다.     


<걸리버 여행기>를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걸리버의 적응력이었다. 그의 적응력의 비법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걸리버는 어느 나라를 가던지 가의 뛰어난 언어 실력으로 그 나라의 언어를 쉽게 익혔다. 그리고 항상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그들의 문화를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우리 아이가 완역본을 읽을 수 있을 때가 오면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전하는 풍자적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걸리버가 여러 나라는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도록 힌트를 주고 싶다.     


아직은 초등생의 나이로 긴 숨이 필요한 완역본을 읽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소설 속에 숨은 뜻을 나지막하게나마 이해한다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다만, 우리 어릴 적처럼 거인국과 소인국 이야기에서 멈춰버리는 것이 아니라 네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걸리버의 모험을 따라가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모험 속에서 위험과 역경을 해쳐나가는 걸리버의 처세나 판단력, 임기응변 등을 배워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보다 먼저 완역본을 읽어 볼 부모라면 꼭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와 그 시대의 배경,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작품 해설을 꼭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참고도서>     

1.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박용수 옮김, 문예출판사 

2.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3. 걸리버 여행기, 조나단 스위프트 원작, 고은주 엮음, 윤유리 그림, 미래엔아이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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