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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Nov 20. 2019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를 읽고

올곧은 조선의 아버지가 2020년에 보내는 메시지

 먼저 읽어보진 않았지만, 아이와 함께 읽고 싶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펼쳤다.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는 아이도 익히 알고 있는 다산 정약용이 전라도 강진에 유배되었을 당시 아들과 둘째 형님, 그리고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모아 엮은 서간집이다. ‘귀양길에 올라’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첫 페이지에는 가족에 대한 궁금함과 임금에 대한 감사와 부인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한 페이지, 두 페이지를 넘기며 읽어가던 중 정약용이 왜 유배를 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깊은 의문이 들었다. 아이와 나는 넘기던 책을 덮고 책장에 꽂혀 있던 정약용 위인전 두 권을 꺼내 읽었다.     



 어릴 적부터 총명했던 정약용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그 외로움을 책으로 달랬다. 성품이 대쪽 같은 아버지 정재원을 따라 서울에 올라와 견문을 쌓았다. 어릴 때부터 똑똑했던 정약용은 스물두 살에 과거에 합격하고 정조의 신임을 얻고 여러 벼슬을 했다. 항상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가졌던 정약용은 우리가 익히 아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서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기도 하는 등 모든 학문에도 능했다. 수원성을 쌓는데 거중기를 설계해 큰 도움이 되는가 하면, 천연두를 치료하는 법을 연구해서 책을 쓰기도 했다. 1801년 천주교 탄압이 대대로 일어난 신유박해와 정조의 개혁을 도왔던 남인들이 대거 제거된다. 이때 정약용, 정약전 형제와 가족들이 체포되고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노론의 모함을 받아 모진 고문을 당한다. 이후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으로 정약전은 전라도 흑산도로 유배된다.      




 목민심서를 쓰고 거중기를 만들어 수원성을 쌓는데 공을 세운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만 기억하고 있던 정약용에 대해 한층 깊게 알게 되었다. 시험문제에나 나올 법한 상식 수준의 역사적 기억만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이 아이 앞에서 조금 부끄러웠다.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에는 학문에 힘써야 함에 대해 아들과 둘째 형님, 그리고 제자들에게 잔소리 같이 당부하는 글이 여럿 있다. 또한 혀로 훑는 듯한 독서가 아닌 뜻을 알지 못하는 글자는 두루 찾아보고 깊게 연구해서 그 근본 뜻을 밝혀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책의 의미를 분명히 꿰뚫을 수 있다며 이 점을 깊이 명심하라고 아들에게 당부한다. 얄팍하고 넓은 식견을 가지려 그저 많은 책을 두루 읽기만 해왔던 나 자신에게 당부하는 말 같이 들렸다.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독서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비의 올바른 양계법이나 술 마시는 법도, 제사상을 차리는 법도 등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전한다. 폐족으로 살아가는 자식들이 행여 잘못 나아가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옆에서 가르치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래서 더욱 효와 선비로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 사대부 집안의 풍도와 규범에 대해 더욱 자주 언급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남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길 바라는 것은너희에게 오만함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닭의 정경을 시로 지어 보아라그러기 위해서는 닭의 생태를 잘 관찰해야 하는데이것이 책 읽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양계니라.     


 폐족이면서 글을 배우지 않고 예의도 모른다면 어찌 되겠느냐보통 집안사람들보다 백배 더 노력해야 겨우 사람 축에 들 것이다내 귀양살이가 몹시 고생스럽다만너희가 독서에 정진하고 몸가짐을 올바르게 한다는 소식만 들리면 아무 걱정 없겠다.     


 편지를 주고받는 두 아들에 대해서는 사실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훈계하고 가르치려는 마음이 더 커 보인다. 똑같은 잔소리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편지글을 통해 전달하니 그렇다. 하지만 막내아들 농이의 죽음을 접하고 슬프고 참담한 마음을 전하는 글에서는 대쪽 같기만 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자신의 슬픔보다 품 안에서 꺼내 흙구덩이에 자식을 묻은 부인에 대한 걱정 또한 가족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었는지 느껴진다. 그 역시 백성을 생각하는 조선의 곧은 선비이기 이전에 한 가족의 일부였음을......


 벼슬을 하는 동안 자식에게 물려줄 밭뙈기도 없이 폐족이 되었다. 하지만 아들에게 유산으로 정신적인 부적 두 글자를 남긴다며 야박하다고 서운해하지 말라한다. 자신의 저서를 꼭 후세에 전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비록 귀양살이 중이지만 자식 앞에서 한 치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비의 모습을 읽었다. 정약용처럼 굳은 신념으로 자식을 떳떳하게 대할 수 있는 그런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느 부모교육에서 질문을 받았다. ‘어떤 부모가 되고 싶으세요?’ 나는 그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존경받는 엄마.’ 그랬다. 아이들에게 풍족한 삶을 물려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자식 앞에 떳떳하고 누구 앞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존경받는 엄마가 되고 싶다. 폐족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아들들에게 글을 배우고 예의를 지키라는 잔소리를 부끄럼 없이 할 수 있는 정약용처럼 말이다.     


 큰아버지를 아버지처럼 섬기라 전하고 조카들과 형수님도 챙긴다.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난 둘째 형님을 기리며 원통해한다. 자식과 부인을 생각하는 것 못지않게 형제간의 정이 깊었던 정약용이다. 특히 외딴섬에 유배되어 있던 둘째 형님에 대해서는 더욱 애틋한 마음을 전한다. 어릴 적 함께 공부하고 토론을 즐기던 형제는 유배 중에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학문을 논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또한 섬에 있으며 짐승의 고기는 전혀 먹지 못한다는 형님의 편지에 들개를 잡아 삶는 방법까지 상세히 알린다. 형님이 고기를 먹고 기운을 차렸으면 하는 아우의 세심함 또한 편지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닷새마다 한 마리씩 삶고하루 이틀쯤은 생선을 먹는다면 어찌 기운을 읽겠습니까? 1년에 개 쉰두 마리를 삶으면 고기를 충분히 먹을 수 있습니다하늘이 형님에게 흑산도를 탕목읍*으로 만들어 주어 고기를 먹고 부귀를 누리게 했는데왜 스스로 고통과 괴로움을 택한단 말입니까들깨 한 말을 보내드리니 볶아서 가루로 만드십시오텃밭에 파가 있고 방에 식초가 있다면이제는 개를 잡을 차례입니다.     


 다산이 아끼는 제자에게 보낸 서신에는 아들에게 전하는 당부만큼이나 중요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선비로서의 품위를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전하고 있다. 희귀한 과일과 맛 좋은 채소를 심어 가꾸는 방법을 알려주고 생계를 꾸려나갈 방도까지도 자세히 알려준다. 그러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해결했으면 글공부에 들어서야 함까지 단단히 일러둔다.    

 

 겨울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모피 옷을 입고여름에는 고운 베옷을 입으며 한평생 넉넉하게 지내며 살고 싶은가그것은 비취나 공작여우나 너구리담비나 오소리 등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그러나 독서 한 가지 일만은위로는 성현을 닮아 갈 수 있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길이 깨우칠 수 있다.     



 서두에 정약용에 대해 알아보면서 천주교 박해에 대한 내용을 궁금해하는 아이와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을 찾았다. 이영서 글, 김동성 그림의 <책과 노니는 집>이다. 천주학 책을 베껴 썼다는 이유로 필사 쟁이 아버지는 모진 매를 맞아 죽는다. 천주교 박해와 맞물려 책방 심부름꾼에서 필사 쟁이로 성장하는 장이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조선 시대의 사회상이 그려져 있다. 맛깔나는 표현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지만, 천주교 박해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한 책이다.      


 조금은 생소해 접근하기 어렵고 더구나 역사적 사실을 배경에 두고 있는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역사적 사실이나 책이 쓰이게 된 배경이 되는 사건들을 다룬 책을 찾아 읽게 되면 고전을 이해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진다. 이것이 엄마가 먼저 읽는 고전의 의미가 아닐까?     


 아이에게 아빠가 자식을 생각하고 형제를 생각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펼쳐 든 책이다. 하지만 나조차 그 마음의 십 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했다. 처음 한번 읽을 때는 다 큰 아들들을 믿지 못하는 잔소리 많은 아빠로만 읽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읽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또 한 번 읽으니 그제야 자식을 사랑하는 아비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절개와 끊임없이 학문에 매진하는 정신, 누구보다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았다. 옆에 두고 두세 번 더 읽으면 또 어떤 가르침이 느껴질지 기대된다. 나도 조금은 멋들고 위트 있게 내 자식을 향한 마음을 편지글로 적어 남겨보고 싶다.                


* 탕목읍 : 고대 중국에서 왕족이나 공신, 대신들에게 공로에 대한 특별 보상으로 주는 영지(領地). 그 지역에서 조세를 받아들여 목욕 비용으로 쓰게 한다는 뜻이다.         


 

<참고도서>     

1.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 정약용 지음, 박지숙 엮음, 보물창고

2. 책과 노니는 집, 이영서 글, 김동성 그림, 문학동네

3. How So? 목민심서를 쓴 정약용, 글 김영자, 그림 박철민, 한국셰익스피어

4. 백성이 잘사는 게 최고야 정약용, 글 전민희, 그림 진선미, 한국톨스토이

5. 다산 산문선, 새로 엮음 전민희, 그림 노성빈,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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