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를 인정한다는 것
본격적으로 나에 대해서 공부해보기로 한다. 아이를 심리상담센터에 데리고 간 것처럼 누군가의 앞에서 나를 온전히 내어 보이기에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심리, 성격에 관련된 여러 글들을 찾아보았다. 그중 쉽게 다가가 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드는 에니어그램을 콕 집었다.
처음엔 나보다는 아이의 성격을 파악하고 접근해 보고 싶었기에 내 아이의 성향을 알아볼 수 있는 책들로 골라 샀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게 되었다. 아이가 아니라 나를 먼저 파악해 봐야 한다는 것을.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우리 아이 속마음>이라는 엘리자베스 와겔리의 책의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당신은 어떤 부모입니까? 자녀를 엄격하게 키우십니까? 아니면 자유롭게 키우십니까? 혹시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질문을 보는 순간 느꼈다. 지금의 나를 먼저 알고 제대로 파악해야 우리 아이에 대해서도 조금 더 깊게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지 않을까? 나 자신에 대한 확신도 없이 아무리 내 아이지만 이렇다, 저렇다 진단할 수는 없었다.
에니어그램은 9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원으로 나타낸다. 에니어(Ennea)는 그리스어로 숫자 '9'를 나타내며, 그램(Gram)은 '그림'을 뜻하는 말이다. 즉, 에니어그램은 '9개의 점이 있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아홉 가지로 분류되는 인간의 성격유형과 각 유형들의 연관성을 표시한 기하학적 도형을 에니어그램이라고 한다.
저 아홉 가지의 유형 중 나는 어느 유형에 속할까? 그 유형에 속한 사람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 유형을 파악하고 이해하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게 질문을 하며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니 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 또 나의 기질은 발휘되었다. 무엇이든 어설프게는 싫다. 그래서 조금 더 전문적인 책들을 구입했고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저 아홉 가지의 사람 유형 중 1 유형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유형은 개혁하는 사람 혹은 완벽주의자라고 표현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설명하는 문항에 표시하라는 유형 검사 문항 20개 중 무려 17개를 체크했다.
1. 질서 정연하게 잘 짜인 것을 좋아한다.
2. 즉흥적인 것을 불편해한다.
3. 일을 제대로 마무리 못하는 것에 대해 자주 죄책감을 느낀다.
4. 사람들이 규칙을 어기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
5.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나 맞춤법이 틀린 단어를 보면 신경에 거슬린다.
6.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이상주의자이다.
7.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편이다.
8. 한번 분을 품으면 오래가는 편이다.
9. 자신이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0. 질투를 느끼게 되면 두려워하며 경쟁적이 된다.
11. 쉴 시간이 없거나 쉬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12. 대상을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기준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
13. 중요한 물건을 살 때에는 그전에 관련된 것들을 철저히 분석한다.
14. 사람들로부터 평가를 받거나 비판받는 것을 질색한다.
15. 다른 사람과 자신을 자주 비교한다.
16. 내게 있어 진실과 정의는 매우 중요하다.
17.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18. 하겠다고 결심한 일은 거의 다 한다.
19.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20. 세세한 것까지도 완벽하게 하려고 한다.
<에니어그램 MADE EASY 중에서>
위의 질문이 1 유형을 평가하는 질문이다. 그중 12, 19, 20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와 동일했다. 물론 체크하지 않은 나머지 3개도 꼭 아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나의 성실함에 대해 정의하고 돌아보았던 앞선 글에서 나타내었듯 나의 완벽주의적인 성격, 책임감에 대해 모든 것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그래서 1 유형에 대해서 조금 더 파보기 시작했다.
1 유형의 사람은 자기 훈련이 잘 되어 있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내가 일을 바라보는 방향과 일치한다. 나는 세상에 조금이나마 나의 경험과 능력을 써서 이롭게 하는 일을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엄마와 아빠가 하는 일에 대해서 세상에 얼마나 기여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곤 한다.
1 유형의 사람은 높은 기준과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다. 그 잣대는 다른 사람에게도 들이 대기 때문에 힘든 상태인 경우 비판적이고 논쟁하려 들며, 단호하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잣대와 완벽에 가까운 기준 때문에 우리 아이와 신랑은 간혹 힘들어한다. 그런 것을 보면 얼마나 내가 높은 잣대를 가지고 우리 가족을 옭아 매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가끔 쿨한 척 했지만, 자주 비판하고 트집을 잡던 나다.
1 유형의 사람은 합리적이며 책임감이 강하고 헌신적이다. 사람 간의 균형이 잘 잡혀 있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사람들을 잘 돕는다. 나는 유머 감각이 뛰어나진 않지만 썰렁함을 자아내지는 않는다. 그리고 책임감과 의무로 내가 가진 역할과 일을 철저히 해낸다. 힘들어도 내가 맡은 일이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도 나와 함께 책임을 다해야 하는 사람이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 불만을 털어놓는다. 아이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하는 것 같은 신랑에게 쏟아내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다.
1 유형의 사람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일을 잘하며 끈기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을 지며 자신이 정해 놓은 원칙에 따라 살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양심을 파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그런 평가를 받기 위해 나는 더욱 더 기준을 곧고 바르게 세우고 지키곤 했다.
1 유형의 사람은 자기가 세운 기대치에 못 미칠 때 자기 자신과 사람들에게 실망하면서도 지나친 책임감으로 인해 부담을 느낀다. 자신이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나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다. 이미 한 일이나 해야 할 일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하고 신경이 날카롭고 걱정이 많다. 그래서 힘들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이렇게 팍팍하게 살아온 나에게 에니어그램이 내려준 처방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 자신에게 정기적으로 특별한 선물을 줘라. 꽃을 사거나, 운동경기를 관람하거나 좋아하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다.
- "~해야 한다"대신 "~하고 싶다" 혹은 "~하고 싶지 않다"라는 표현을 사용해라.
- 한 번쯤은 자신에게 방이 어질러져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줘라.
- 분노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쓸모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여라.
- 당신의 분노를 안전하게 배출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라.
- 맡겨진 몫 이상을 떠맡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라.
- 완벽하게 하지 못했더라도 끝내고 다음 일로 넘어가거나 제시간에 퇴근해라.
- 과거의 잘못을 곱씹는 대신 가장 자랑할 만한 일을 기억해라.
- 완벽의 기준을 약간 낮춰라.
과연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중 나름 내가 짊어지고 있던 짐을 덜기 위해 했던 행동들도 들어 있어 조금의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몇 가지의 처방은 여전히 힘들 것 같다.
스스로 나에게 쉬면서 즐겨도 괜찮다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은 완벽하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 내가 가지고 있는 1 유형의 빡빡한 삶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쩜 이렇게 나를 콕 짚어서 설명해 놓았는지 놀란 만큼 나는 더욱 에니어그램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른 유형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 유형은 나와 일치했기에 이해하고 공부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나머지 8가지 유형에 대해서는 쉽게 와 닿지 않았다. 우리 아이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조차도 버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독학에서 벗어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전문가를 통해 내가 진정한 1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