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애 Jan 02. 2020

2020년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하며

그물을 짤 계획은 지금부터

나는 어제부로 마흔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2020년에 마흔이 되었다. 혼자 20+20=40이라는 공식을 붙여가며 굳이 마흔을 한 번 더 들먹여본다. 타종소리를 들으며 혼자 마흔이 된 것이 억울하기라도 한 듯 81년생 친구들에게 새해인사를 전한다.     


'친구들! 사십이 되려니 위축된다. 그렇지만 우리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자. 인생은 사십부터...  '   


긍정 100 에니어그램 7번 친구의 한마디에 위안이 된다.     


'아직 살아야 할 날이 살아온 날 보다 더 길거야. 멋진 중반전 시작합니다~~  '


또 다른 친구는 여행 계를 시작해보자 한다. 지금부터 10년 후 쉰 살이 되었을 때 같이 여행을 떠나기로 여고 친구 셋은 벌써 여행계 얘기만 세 번째다. 하지만 화끈하게 진행이 되지 않는 건 일하랴 애 키우랴 바쁜 인생 중반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렷다. 일 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든 친구들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매번 여행계 계획을 세우며 안부를 묻곤 할 거다.     


오늘 오후, 전화 온 대학 절친은 나에게 축하한다 말한다. 우리는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했다고. 5월에 꼭 만나서 같이 두 번째 성년식을 치르자고 농담을 섞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구실을 만든다. 역시나 아이 낳고 키우느라 추석 시댁에서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잠깐 얼굴만 스치듯 본 친구. 두 번째 스무 살이라는 말에, 성년식을 기념하자는 말에 우리의 스무 살이 떠올랐다. 뭣도 모르고 대학생활에 푹 빠져 청마상의 망아지처럼 날뛰며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들이붓던 때. 성년식 날은 꼭 대학 축제와 겹쳐 영탑지에 첨벙첨벙 빠뜨리고 빠지곤 했다.     


2020년 첫 일정은 올해 환갑을 맞이하는 우리 엄마와 병원에 다녀오는 일이었다. 드디어 결심한 무릎 인공관절수술 날짜를 잡기 위해서다. 세 번째 스무 살을 살짝 넘긴 우리 엄마는 아직도 젊다는 이유로(물론 인공관절 수술을 하기에는 젊다는 소리다.) 몇 년째 수술을 미루다 드디어 결정했다. 지금 수술을 하면 늦어도 20년 뒤에는 재수술을 해야 하기에 최대한 미루는 것이 무릎 인공관절 수술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젊을 때 수술하고 이십 년을 안 아프고 다니고 싶은데 다니며 사는 게 좋겠다는 나의 의견에 엄마의 용기가 더해졌다.     


엄마의 무릎 상태를 보며 마흔이 된 나를 본다. 아직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 보다 길 꺼라는 친구의 말을 되새기며, 다시 돌아올 다른 스무 살들을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똑바로 걷기를 처음 걸음마를 할 때처럼 연습해본다. 오늘따라 최대한 조신한 걸음걸이와 바른 허리를 유지해본다. 엄마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말씀을 자주 꺼내신다.     


“몸 애껴라.”     


마흔, 멋진 중반전을 맞이해야 할 이때 건강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처량맞다. 마흔이 되면 내 마음대로 세상을 움직이게 될 것만 같았던 때도 있었다. 아마 첫 번째 스무 살이었겠지? 그래도 마흔, 우리 어머니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때다. 일흔이 넘은 우리 어머니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마흔, 얼마나 좋니, 한창때지, 못할게 뭐가 있어. 내가 그때는 애들이 빨리 크기만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지금은 그 시간이 얼마나 간절한지 모른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라는 말처럼 오늘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데. 하루 차이가 아닌 삼십 년의 인생의 차이를 둔 어머니의 마흔은 어떠했을까? 다시 돌아간다면 또 어떠할까?     


올해 들어 급히 읽은 책들이 있다.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던 건 마흔을 일 년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팀 페리스의 <마흔이 되기 전에>가 그중 하나다. 여름휴가를 전후로 읽은 이 책은 서른아홉에 읽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 전에 8부 능선을 넘어라     


마흔이란 나이는 누구에게나 상징적인 경계선이다젊은 시절의 뜨거운 질주가 만들어낸 결실들을 구체적인 형태로 만들어가는 시기가 마흔이다마흔이 되지 전에 목표의 8할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계속 뛰어야 한다다만 마흔 이후의 질주는 썩 매력적이지 않다.     


이 글을 읽고 메마른 입에 고구마를 욱여넣은 듯 콱 막혔다. 젊은 시절 뜨거운 질주를 했지만 그 결실을 보지 못하고 목표의 2할도 하지 못한 나는 어쩌라고. 아니 인생에 목표가 있었는지 조차 분명하지 않은데. 이런 생각들로 이 책을 마저 읽어야 할까라고 생각할 때 노아 케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사는 게 뿌듯함을 주는 행복인 줄 알았다하지만 틀렸다넓은 바다에 던질 그물을 짜듯 일정표를 만들지 않으면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한 채 시간만 빠르게 흘러갈 뿐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일정표를 만드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사람들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게 한 40년 동안 수없이 가는 낚시 줄만 허공에 던졌다. 넓은 바다에 던질 그물을 짜지 않았다. 그렇게 40년을 보낸 것을 후회할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 올 세 번째 스무 살에는 적당한 크기의 고기가 잡힐 만한 그물을 만들어 고기를 낚으리라. 마흔 전에 8부 능선을 넘지 못했음을 한탄하고 멈춰 서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그물을 엮으면 될 것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     


이 말을 핑계 삼아 나는 두 번째 스무 살을 살아 내보련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타 할아버지와의 숨바꼭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