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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Jan 10. 2020

환갑 여고생의 진로 고민

먹고 살라다 보니 하던 일, 하고 싶은 일

이번 입시제도의 변화에 가장 큰 타격이 된다는 고1(2020년에 고2가 됨)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입시 공부해야겠네. 무슨 과에 가고 싶어?"


"음...... 건축과나 전자공학과 같은데."


"응? 갑자기 그런 과는 왜?"


"예전부터 라디어 뜯어고치고, 시계고 고치고 했잖아. 모 저런 전자제품들은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에이... 그게 라디어 뜯어고치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지... 그냥 한식조리학과나 사회복지학과가 좋지 않아?"


"대학은 무슨 대학... 고등학교만 나와도 감지덕지인데......."


"왜? 기왕 공부하는 거 대학까지 바라보고 공부해야지."


공대를 나온 나는 대학의 전문 교육이 그냥 고등학생이 생각하는 그런 수준의 공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실질적으로 라디오 뜯어고치고 전기회로 만지는 것이 흥미로웠던 경험으로 과를 선택하는 것이 헛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날 고1 학생과의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모 댁에서 김장이 있던 날, 외갓집 식구들이 모두 모여 보쌈을 먹으며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며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건축과나 전자공학과?"


"난 그런 게 어려서부터 재미있더라. 알자나 내가 어릴 때 이것저것 뜯어고치고 했던 거."


"그렇지, 근데 누나. 누나는 한식조리학과 그런 게 더 좋지 않아? 음식도 잘하고 그게 딱 적성인데......"


한참 말이 없던 여고생은 약간 높은 어조로 한마디 했다.


"그건 내가 먹고 살라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거고...... 진짜 배우고 싶은 건 다른 거잖아."


여고생의 단단한 어투에 모두 눈만 뚬벙 뚬벙 거렸다.


이 여고생은 올해 막 환갑을 맞이하는 우리 엄마다. 없는 살림에 두 딸을 키우느라 버스 정거장 앞 슈퍼도 하시고 은행의 식당에서 오래 일을 하셨다. 그리고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는 칼국수집을 차리셨다. 10년의 식당일을 마칠 땐 손자 둘이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 10년이 지난 지금. 손주 둘을 보며 엄마는 못다 한 공부를 하셨다. 방송통신 중학교를 3년 다니시고 바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올해 고2가 된다. 


엄마의 음식 솜씨는 정말 으뜸이다. 어떤 음식이건 한번 맛보면 척척 해내신다. 사실 맛을 본 적도 없는 음식을 눈으로만 보고도 알아서 해내시니 정말 신이 주신 '맛 손'을 가지셨다. 그런데 그런 음식 솜씨가 살려다 보니, 먹고 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긴 거라고 하신다. 음식 만드는 법 좀 배워보려고 요리학원을 들락거리고 여러 레시피를 보며 따라 해도 항상 엉망인 '똥 손'을 가진 사람이 들으면 기가 찰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단다. 


예전 엄마는 외식비가 아까워 모든 걸 집에서 해내셨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토마토케첩과 돼지고기 간 것을 섞어 소스를 만들어 프라이팬에 피자를 해주셨다. 집에서 냄새가 나건 말건 삼겹살도 집에서 구워 먹었다. 나는 고기를 밖에서 사 먹을 수 있다는 걸 대학에 가서야 알았다. 손수 돼지고기에 칼집을 넣고 빵가루를 묻혀 튀겨주시는 돈가스는 친구들이 가장 좋아하는 내 도시락 반찬이었다. 난 그런 엄마의 취미이자 특기는 요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


그래서 가끔 내가 작은 요리라도 하면 아주 맛있게 드신다. 나가서 사 먹는 오천 원짜리 칼국수도, 손주들이 좋아하는 무한리필 돼지갈비도 맛있게 드신다. 내 손으로 만든 음식만 몇십 년째니 그러실 만도 하다. 그런 엄마께 한식조리학과를 권했으니 빈정 상하실만도 하다. 딸과 사위를 비롯하여 동생들까지도 그렇게 생각하니 말이다.


국민학교 시절 육상과 핸드볼 선수로 뛸 만큼 체육에 소질이 있었던 엄마는 처음 생긴 체육중학교 진학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엄마의 할아버지의 강력한 만류와 줄줄이 배워야 하는 오빠와 동생들을 대신하여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몸으로 하는 건 뭐든 자신 있었던 엄마는 어릴 적 우리 슈퍼 앞에서 줄넘기로 쌩쌩이를 연속으로 열 번도 넘게 하는 기염을 뿜어내시곤 했다. 그랬던 엄마가 오늘 무릎 인공관절수술을 받으신다. 


수학, 영어 공부하느라 안 돌아가는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도 힘들지만, 세상천지 다니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여고생이 아픈 다리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일들이 더 안타깝다. 음식을 잘 하지만, 체육에도 소질이 있고 전자제품 뜯어고치기에도 관심이 많았던 꿈 많은 여고생 울 엄마. 오늘 수술 잘 받고 아픈 다리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던 일들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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