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애 Jan 22. 2020

일 년간의 학교 경험

엄마가 들려주는 동화 교실

 직장을 관두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아이 학교에 리딩맘을 신청한 것이다. 큰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도 총회에도 참여하지 않을 만큼 아이의 학교 일에 관심이 없었다. 우리 반에서 총회에 안 온 엄마는 나 하나였다고 한다. 그런 내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학교 문턱을 주마다 넘어 다녔다. 타의는 큰 아이가 3학년이 되고 엄마의 의사와 상관없이 학급 회장이 되었기 때문이고 자의는 앞서 말한 대로 리딩맘을 지원해서이다. 

 

 아이의 학교 생활도 궁금했지만, 많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책을 읽어주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만 읽어주던 책을 이십오 명 남짓 한 아이들에게, 그것도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겠다고 한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에 연기하듯 책을 읽어주려면 손 발이 오그라드는 엄마였다. 이런 내가 그렇게 많은 아이들 앞에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그 소회를 짧게 적어본다.




 아이들과 동화교실 해온 시간을 돌이켜본다. 봄의 꽃망울같이 수줍기도 하고, 눈밭에 마냥 뒹구는 철없는 강아지 같던 아이들이 이제는 제법 영근 듯하다. 12년의 직장생활을 마치며 그동안 소원했던 아이와의 시간을 만회하려는 생각으로 동화교실의 문을 두드렸다. 어떤 책을 읽어 주면 좋을까? 고심을 하다 우리 아이들과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 하나를 골랐다.


 동화교실 첫날, 칠판을 등지고 처음으로 마주한 이십 오명 남짓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생경함을 느꼈으나, 이내 내 아이의 친구라는 생각과 낯익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용기가 생겼다. 잠자리에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던 그 느낌을 떠올리며 책을 읽어나갔다. 전날 밤, 아이를 입학시키고 처음 갔던 공개수업의 모습을 떠올리며 불안해했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간의 학교생활로 쑥 자라 있는 삼 학년 아이들의 의젓함에 내심 뿌듯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15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은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책 속의 주인공과 동화되어 웃기도 하고, 개구진 말을 툭 내뱉기도 하는 아이들은 집에서 보는  내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책 속의 그림을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교탁 앞까지 나와 프로젝트에 얼굴을 들이 밀고는 “내가 주인공이다.”를 외치며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아이. 혼자 읽고 있던 책에 푹 빠져있었으나 나의 목소리에 궁금증을 가지고 고개를 들어 눈 맞춰 주던 아이. 읽어 준 책 또 읽고 싶다고 빌려줄 수 없냐고 했던 아이. 아이들의 향기에 취해 들어온 벌 한 마리에 한바탕 소동을 벌인 일. 그렇게 쌓아 온 아이들과 함께 한 추억을 통해 아이들이 자란 만큼 나 또한 한 마디쯤은 자라지 않았을까?


 책은 아이들에게도 어른에게도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다. 또한 나와 아이를 이어주는 소통의 매개가 될 수도 있다. 같은 공간 안에서 숨 쉬며 읽어나간 책을 통해 길에 지나가며 만나는 어떤 아이라도 보이지 않는 작은 끈으로 연결됨을 느낀다.          




 올 해는 작은 아이가 1학년에 입학한다. 학교 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겠지? 하는 설렘과 걱정이 함께 든다. 한 번 겪어봤다고 설렘과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흡사 둘째를 낳으려 산부인과에 갈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 큰 아이 때는 직장 생활하느라 정신없이 흘러간 그 시간을 둘째라고 특별히 학교에 잡아두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똘망 똘망한 내 아이의 친구들이 매주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내가 나에게 주는 대단한 기회이다. 올해도 시간이 허락한다면 아이들 앞에서 책 읽어주는 엄마로 서 있고 싶다. 물론 우리 아이의 허락도 반드시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환갑 여고생의 진로 고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