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소년 표류기>를 읽고
아들이 3학년에 되니 엄마에게 책을 추천하기도 한다. 그렇게 아들에게 소개받은 책이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이다. 학교에서 단체로 읽고 독후활동을 진행했다. 아이는 가족 여행으로 인해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책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약 25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읽어보기를 권했다.
읽어보겠다고 이야기만 해 둔 이 책을 겨울 방학을 앞두고 아이가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을 때서야 읽게 되었다. 나 또한 이야기에 쑥 빠져들어 단숨에 읽었고, 왜 나에게 이 책을 권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영화 타이타닉의 마지막 배가 침몰하기 직전의 상황과 같은 긴박함이 그려 있었다.
칠흑처럼 어두워진 바다를 세찬 폭풍우와 천둥소리가 뒤흔들고 있었다.
“철썩철썩 쏴!”
“우르릉 쾅!”
먹물을 끼얹은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 가랑잎처럼 떠밀려 다니는 한 척의 배가 있었다. 그 배의 큰 돛대는 꺾였고 돛은 찢겨 있었다. 더구나 배의 이름판마저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15소년 표류기>는 제목과 같이 15명의 소년이 무인도에 표류하여 지낸 2년간의 이야기를 다룬 쥘 베른의 모험 소설로 원제는 <2년간의 휴가>이다. 1860년 2월 15일 밤, 당시 뉴질랜드 수도였던 오클랜드의 ‘체어맨 기숙학교’ 학생 14명(8세에서 14세 사이)과 수습 선원 1명이 방학을 맞이하여 요트 여행을 위해 출항 전날 배에 타고 있었다. 어찌된 이유로 부두에 묶어놓은 밧줄이 풀리면서 배는 바다 한가운데로 떠내려간다. 바다를 헤매다 폭풍우를 만난 ‘슬라우기호’는 20여 일 동안의 표류 끝에 무인도에 다다르게 된다.
이들은 슬라우기호에 남아 있는 식량과 옷, 총 등을 챙기고 동굴 안에서 생활하게 된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생활을 한다. 일과표까지 짜 놓고 계획적인 생활을 해 나가는 아이들은 점차 섬 생활에 적응해 간다. 그 가운데 불만을 품은 아이들이 동굴을 떠나게 된다. 그들은 표류해 온 세번호의 보트를 만나게 된다. 세번호에서 도망쳐 온 케이트 아주머니로부터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켜 배를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소년들은 동굴을 습격해온 악당들을 지혜롭게 물리치고 보트를 수리하여 섬을 떠난다. 그리고 화물선에 구조되어 오클랜드로 돌아오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은 ‘체어맨 기숙학교’가 어떤 곳이기에 이토록 아이들이 영리하고 용맹스러울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이들을 길러내는 학교라면 찾아가 내 아이도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마 나의 생각을 내 아이가 들었다면 기가 찰 것이겠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부모의 욕심이 끝이 있을까?
두 번째 든 생각은 우리 아이가 얼마나 흥미롭게 이 책을 읽었을까? 하는 것이다. 7살에 친구들과 모험을 떠나 두어 시간을 할머니와 엄마의 애를 태웠던 아이다.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가방에 망원경, 밧줄, 손전등, 나침반부터 챙겨 넣는 아이다. 학교에서 재난 대비 시뮬레이션 교육을 받을 때 자신의 조를 1등으로 만든 아이다. 이런 아이에게 이 책은 글이 아닌 영화를 보는 듯했을 거다. 이렇게 배가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가 아닌 나도 무인도에 갇혀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거다.
열 살 전후의 소년들이 어떻게 어른 하나 없이 배의 키를 잡고 폭풍을 해쳐나갈 수 있었는지. 어떻게 동물들을 잡아 기름을 구하고 연을 만들어 하늘을 날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무인도에 2년이나 긴 시간을 살게 될 거라는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하듯 계획을 세우고 겨울을 준비할 수 있었는지. 사람들을 죽이고 세번호를 빼앗은 악당 어른들과 싸워 이길 수 있었는지. 이 모험소설을 읽어가며 드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소설이기에 가능하다기엔 너무 허무맹랑했다. 하지만 주인공이 아이들이 아닌 어른으로 비춘다면 꼭 우리네 사는 사회를 비추는 듯했다.
바다 이야기, 섬 생활, 모험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졌던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선원이 되어 바다를 탐험하는 것이 작가 쥘 베른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쥘 베른은 프랑스의 소설가로 근대 SF의 선구자이다. 1828년 태어난 쥘 베른은 무역선이 많이 드나드는 프랑스 서부의 항구도시 낭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반대로 선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다녔다. 이 경험이 과학과 모험을 소재로 한 소설의 밑거름이 되었다.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비롯해 64편의 소설을 썼는데 그중 54편이 과학적 상상력으로 쓴 이야기이다. 그 당시 존재하지 않는 잠수함, 로켓, 텔레비전, 인터넷 같은 것들을 소설의 소재로 써서 그의 소설이 허황된 이야기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상상력은 최소 100년이나 앞서 있었기 때문에 그를 예언가라 부르기도 한다. 그의 상상력은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해 발휘된 것으로 새로운 발명이나 발견을 2000여 권의 노트에 기록해두고 그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의 소설이 사실적인 허구를 그린 이유가 바다를 동경하며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써 내려갔기 때문이라니 <15소년 표류기>를 읽고 가졌던 의문이 해소되었다. 취향 상 이런 허구의 모험 이야기를 읽어 볼 기회가 없는 나에게 새로운 책 세상을 알려준 아들에게 새삼 고맙다. 어릴 적 만화영화로 보았던 <80일간의 세계 일주>도 재미있게 읽었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믿고 읽어봐야겠다. 같은 작가를 따라 읽는 이야기도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방학을 통해 아이와 쥘 베른의 이야기 속을 탐험해보려고 한다. 특히 쥘 베른의 소설은 영화화된 것이 많기에 그 영화들을 찾아보려 한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은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매개로 소통하며 재미있게 독후 활동을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참고도서>
1. 15소년 표류기, 원작 쥘 베른, 옮김 조한기, 그림 김순금, 작품 해석 김준우, 삼성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