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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Mar 12. 2020

하고 싶은 건 마음껏 다하는 아이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읽고

 커다란 가방에 금화를 가득 들고 원숭이 닐슨 씨와 말 아저씨와 함께 뒤죽박죽 별장으로 온 주근깨와 빨간 머리를 가진 아이는 바로 삐삐 롱스타킹이다. 말을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릴 만큼 힘이 세고, 온 집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만들어 마음껏 먹는다. 아빠가 쥐어준 금화로 보고 싶은 서커스도 마음껏 보도 사탕도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다.     


 어릴 적 엄마는 돌아가시고 아빠는 삐삐와 함께 바다를 항해하던 중 폭풍우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삐삐는 굳게 믿고 있다. 엄마는 천사가 되어 하늘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아빠는 바다를 헤엄쳐 다니다 식인종 섬에 도착해서, 식인종의 왕이 되었을 거라고. 그런 삐삐는 이따금 엄마가 있는 하늘에 대고 손을 흔들며 말한다.     


 “엄마, 내 걱정은 마세요. 난 잘하고 있으니까.”     


 이런 삐삐는 뒤죽박죽 별장에서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옆집에 사는 토미와 아니카와 친구가 되어 상상도 못 할 일들을 저지른다. 어른들 눈에는 문젯거리를 만들어 저지르는 것으로 보이지만, 삐삐는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뿐이다.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른들이 어린이집에 가서 살기를 권유하지만, 삐삐는 말한다. 뒤죽박죽 별장이 어린이집이라고. 방학이 부러워서 학교에 갔던 삐삐는 선생님이 하는 질문에 꼬박꼬박 대꾸를 한다. 종이에 그림을 그릴 때는 교실 바닥 전체에 말을 그린다. 말을 그리기에는 종이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어릴 적 TV에 방영된 시리즈로 보았던 <말괄량이 삐삐>를 이렇게 책으로 만났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쓴 이 책은 어린 딸이 폐렴에 걸렸을 때 자장가를 불러주는 대신 해주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쓴 것이다. 삐삐 롱스타킹은 린드그렌의 딸 카린이 지은 이름이다.      


 아이들이 한 번쯤은 꿈꾸던 일들을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혼이 날까 못했던 일들을 삐삐는 거침없이 해낸다. 글씨도 잘 쓰지 못하고 셈도 못하는 삐삐. 재미를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는 삐삐의 자유분방함 때문에 이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하려 했을 때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1945년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이 출간되자마자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린드그렌은 그 후 삐삐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두 권 더 썼다.      


 린드그렌은 그 후 90세가 넘을 때까지 100권이 넘는 작품을 썼고, 100개국이 넘는 나라에 80여 가지 언어로 출판되었다. 어릴 적 자신이 놀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삐삐 시리즈 이외에도 젊은 시절을 담아 카티를 주인공으로 한 여행 소설도 있다.      


 방학을 맞이하면서 큰 아이에게 사준 시공주니어 문고 시리즈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삐삐를 반가워하는 나에게 아이는 삐삐 책이 두 권 더 있다고 말해줬다. 그렇게 나는 아이보다 먼저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읽었다. 재미있게 책을 읽고 있는 내 옆에서 간간히 책을 훔쳐보던 아이는 내가 책을 다 읽자마자 바로 따라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바로 삐삐 시리즈 인 <꼬마 백만 장자 삐삐>, <삐삐는 어른이 되기 싫어>를 연달아 읽었다.      


말괄량이 삐삐 TV 시리즈와 애니메이션


 저녁을 먹고 나서는 <말괄량이 삐삐>를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잉거 닐슨이 삐삐로 주연한 TV 시리즈를 함께 봤다. 경찰과 도둑, 그리고 보육센터 아줌마에 대한 에피소드가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애니메이션은 원작과 많이 달랐다. 또한 삐삐의 기발한 생각과 행동들이 잘 드러나지 않아 아이들도 재미없어했다. 하지만 TV 시리즈는 화질은 떨어졌지만 재미있게 보았다. 나는 이 또한 원작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삐삐 시리즈를 다 읽지 않은 나의 오해였다. 아이는 영상 안에 <꼬마 백만 장자 삐삐>, <삐삐는 어른이 되기 싫어>의 이야기가 모두 들어 있다고 했다. 물론 순서가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다 담겨있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말괄량이 삐삐> TV 시리즈 보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삐삐를 읽고 시리즈를 모두 읽어봐야겠다고 생각만 한 나와는 달리 바로 뚝딱 읽어버리는 아이에게 부끄러웠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고 바로 <햇빛 사냥>을 읽으며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은데 엄마가 책을 안 읽어서 안 되겠다고 말한다. 먼저 이야기를 해 버리면 스포일러가 되어 엄마가 책을 읽을 때 재미없어질까 봐 배려한다. 그러면서 빨리 읽으라고 재촉한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읽으며 삐삐처럼 엉뚱한 모험을 감행하면 어쩌나, 학교를 다니기 싫어하면 어쩌나,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모조리 다 해버리는 삐삐를 부러워하면 어쩌나 하며 걱정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냥 엉뚱한 삐삐의 일상을 재미있게 바라 볼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안심이 되면서도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미 아이가 생활하는 환경과 패턴에 길들여진 것 같았다. 그냥 책을 읽고 재미를 느끼는 것으로 대리 만족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도 삐삐의 아빠처럼 아이를 믿고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하고 싶은 건 다 하렴.”     



<참고자료>     

1.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롤프 레티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2. 꼬마 백만 장자 삐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롤프 레티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3. 삐삐는 어른이 되기 싫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롤프 레티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4. (더빙) 극장판 말괄량이 삐삐 애니메이션, 마이클 샤크 감독

5. 말괄량이 삐삐 TV 시리즈, 잉거 닐슨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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