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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Feb 21. 2020

마을버스 기사님께 배운 인사의 여유

 미팅이 잡혀있는 아침. 말리지 못한 머리로 유치원 가는 아이를 배웅하고 급하게 화장을 한다. 옷을 챙겨 입고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고는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간다. 매시 정각, 15분, 30분, 45분에 출발하는 마을버스를 눈 앞에서 놓쳤다. 현관을 나오며 신발을 바꿔 신은 딱 15초 때문에 버스를 놓쳤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지하철 시간을 확인한다. 원래 타려던 지하철 역까지 가는 버스는 떠났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다른 버스로 눈길을 돌린다. 이 버스는 다른 지하철 역으로 가는 버스다. 이 버스를 타는 게 맞을지, 원래 타려던 버스를 15분 기다려 타는 게 맞을지 고민한다. 그러다 기다리고 있는 버스로 다가간다. 버스에 한 발을 올린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내 오른발을 버스에 올림과 동시에 버스 기사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나도 자동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는 급하게 질문에 들어간다.


"안녕하세요. 이 차 언제 출발해요?"


"네~~, 40분에 출발합니다."


 타려던 버스보다 5분 빨리 출발한다. 게다가 이 버스는 내가 가려던 지하철 역보다 두정거장 앞선 역까지 데려다준다. 빨리 머리를 굴려 계산하고 마저 한 발을 올려놓는다.


삑~~


 카드를 찍고는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어 두 분의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타신다. 그리고 딱 40분이 되어 버스는 출발한다. 미팅 약속시간은 10시 30분. 늦을까 봐 마음이 급하다. 바로 지하철 시간을 확인한다. 9시 59분 출발하는 지하철을 타야 한다. 버스가 조금 빨리 달려주면 좋겠다.


 출근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 정거장마다 할머니들께서 많이 타신다. 버스를 올라타는 걸음걸음이 무겁다. 자리에 앉는데까지도 더디 걸린다. 기사님은 매번 손님의 엉덩이가 의자에 딱 붙고 나서야 출발하신다. 그 사이 초록불이던 신호가 바뀌고 버스는 한 번의 신호를 더 기다려야 한다.


 '에잇, 그냥 다음 버스 탈걸 그랬나?'

 '그냥 여기서 내려서 지하철 타는 곳까지 뛰어갈까?'


 여러 생각이 빨리 가고 있는 시간을 애석하게 만든다. 이런 걸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던가? 버스는 지하철 역까지 몇 안 되는 버스정거장마다 멈춘다. 그리고 손님을 태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올라타는 손님, 손님마다 기사님은 인사를 건넨다. 타는 손님 중 더러는 그 인사에 화답한다. 그리고 버스는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손님이 자리를 안정되게 잡으면 출발한다. 2월 중순이지만 버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은 이미 봄이다. 나도 모르게 외투의 단추를 풀고 세웠던 허리를 의자에 기댄다. 그리고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세먼지 그득한 하늘이지만 왠지 모를 따스함에 숨이 한번 크게 쉬어진다. 드디어 버스는 지하철 역에 도착한다.


 "기다리세요. 버스가 서고 일어서셔도 됩니다." 


 버스가 정류소에 다다르기 전 사람들은 엉덩이를 자리에서 떼고 일어난다. 혹여 내리지 못할까 불안한 할머니들과 빨리 뛰어가 지하철을 놓치기 싫은 젊은이들이 뒤엉킬 찰나, 기사님은 조용히 타이르듯 뒷거울을 보시며 말씀하신다. 그리곤 관성의 법칙을 거스르는 듯 버스는 멈춰 선다.


삑,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삑,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삑,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버스 카드를 찍을 때마다 울리는 '삑, 안녕히 가세요'라는 기계음마다 기사님은 "안녕히 가세요." 하신다. 이번엔 뒷거울이 아닌 의자에서 몸을 반쯤 돌려 내리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모두 바라보며 인사를 하셨다.


 "감사합니다."


 대여섯 분의 할머니가 내리고 그 뒤를 따라 내리며 나도 기사님께 인사를 건넸다. 버스를 내려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내 앞에는 먼저 내린 할머니들이 느린 걸음을 재촉해 걷고 계신다. 앞만 보고 가려던 나는 가만히 뒤를 돌아 버스를 바라봤다. 임무를 다한 듯 버스는 정거장에 설 때와 똑같이 천천히 정거장을 빠져나갔다. 할머니들의 걸음을 따라 지하철 승강장에 도착한다. 조금 기다리지 않아 지하철에 올라탔다. 도착시간을 확인하다 알게 되었다. 15분을 기다려 가까운 지하철 역에 갔어도 탔을 동일한 지하철이었음을...


 5분 차의 동동 걸임이 무의미했다. 괜히 마음 졸이고 나의 결정을 한탄하며 기다리지 못했다. 하지만, 나도 모를 여유가 온몸에 밴 것 같았다. 그리고 떠올랐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따뜻했던 기사님의 목소리가.


 약속시간은 늦지 않았다. 그리고 늦었다 해도 이해 못해주실 분들도 아니었다. '10분 늦을 거 같아요'라고 메시지 하나 먼저 보내면 되었다. 동일한 시간을 쓰면서도 매번 바쁘고 긴장 속에 사니 주변을 둘러볼 생각도 못한다. 어차피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인데 말이다.


 그날 아침은 유난히 따뜻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까지 부렸다. 종일 기사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미팅이 끝난 뒤 목표를 따라 달리던 나를 잊고 일부러 길을 방황했다. 그 방황 속에서 또 좋은 인연을 만났다. 급함속에서 만난 기사님 덕분에 나는 방황 속 여유를 한껏 부릴 수 있는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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