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애 Feb 10. 2020

지겨운 음식, 그리운 음식

슈퍼집 딸의 배부른 소리...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전을 부친다. 기름에 노릇하게 익어가는 전은 참 맛있다. 따끈할 때 간이라도 볼 샘치고 하나 베어 물면 입가에 살짝 묻은 기름도 맛있다. 꼬치전, 동태전, 육전, 동그랑땡뿐만 아니라 남은 계란과 채소에 팽이버섯을 다져 넣고 부치는 전도 그렇다. 하지만 그중 딱 하나 간 보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두부전이다. 허연 두부를 홀수로 잘라 부친다. 행여 부서지기라도 할까 여분으로 하나를 더 자르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잘라 맛보지 않는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작은 슈퍼를 했다. 버스가 자주 다니는 정류장 앞에서 과자, 아이스크림 등은 물론이고 콩나물을 비롯하여 간단한 채소와 과일도 팔았다. 80년대 후반, 바나나가 엄청 비싸던 그 시절 까맣게 변해버리고 물러버린 바나나는 항상 내 차지였다. 물러서 못 팔기 전에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항상 까맣게 말라버린 바나나 껍질을 벗겼다. 그래도 행복했다. 세 쪽으로 나뉘는 바나나를 결을 따라 잘라먹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꼭 바나나를 살 때 바나나 끝까지 푸른 것을 고른다. 두꺼운 껍질을 벗겨 풋내가 나는 딱딱한 바나나를. 혓바닥으로 살짝만 눌러도 갈라지던 바나나가 아닌 서걱서걱한 바나나를 우걱우걱 씹어 먹는다.


 슈퍼집 딸은 모든 아이들의 선망이었다. 다 무른 바나나를 먹어도 부러워했다. 하지만 항상 바나나 같은 고급만 먹는 것은 아니었다. 성한 과일은 먹어본 적이 없다. 제일 맛있는 과일이 벌레 먹은 과일인 줄 알았다. 물론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새벽이면 항상 살짝 열린 셔터 아래로 두부판이 놓였다. 따끈한 두부를 바로 잘라먹으면 참 고숩고 맛있다. 하지만 이 따뜻한 두부의 맛은 대학 새내기 시절 막걸리와 함께 잘 볶은 김치를 만났을 때 진정한 맛을 느꼈다. 아빠가 늦은 저녁 들어오시면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가난한 살림에도 먹을 것은 비교적 잘 먹었다. 슈퍼집이기도 하지만 고기를 특히 삼겹살을 자주 먹었다. 그리고 또 자주 등장한 반찬이 있었으니 바로 두부 부침이다. 어떤 날은 기름에 소금간이 된 두부 부침을 먹었고, 어떤 날은 부친 두부를 간장 양념에 졸여 먹었다.


 사실 잘 몰랐다. 내가 유독 두부 부침에 손이 안 가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기 전까지는. 그러다 떠올랐다. 이틀에 한번 꼴로 상에 오르던 두부 부침을 말이다. 그 기억이 떠오른 얘기를 들은 우리 엄마는 그리 자주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라며 기억력도 좋다 하신다.  여름이면 특히 더 자주 올라왔던 두부 반찬. 그렇다. 팔다 남은 두부는 유통기한이 지난 여느 다른 식품과 달랐다. 쉰내가 날랑 말랑한 반품되지 않고 남는 두부는 항상 우리 상에 올라오곤 했던 거다. 그렇게 기억 속에 사라져 있던 두부 부침은 나의 삶 어디 한 구석에 살아남아 있었나 보다. 11년 차 주부인 내가 아무리 반찬이 없어도 두부 부침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비싸디 비싼 무른 바나나 한송이를 한자리에서 해치우고 탈이나 고생한 적이 있지만, 여전히 바나나는 나의 중요한 간식이다. 물론 바나나의 푸른 기가 가시고 검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하면 아이들에게 양보한다. 지금은 따끈한 모두부를 만나기 쉽지 않지만, 두부는 모니 모니 해도 소금 살짝 넣은 물에 데쳐서 볶은 김치랑 먹을 때 제일 맛있다. 막걸리도 함께면 그만이다. 요즘에는 부침용, 찌개용까지 나눠서 깔끔하게 팩에 담아 나온다. 유통기한까지 꼭 찍혀있다. 일부러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볼 필요도 없다. 항상 나는 찌개용 두부를 사곤 했다. 하지만 내일은 부침용 두부 한 팩을 사다 기름에 고소하게 튀겨볼까? 우리 아이들과 엄마의 추억 뭍은 이야기도 함께 나눠보면 지겹던 부두 부침도 새로운 맛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의 승진, 나의 승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