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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Mar 27. 2020

배부른 넋두리라는 걸 알지만...

내 마음에 보내는 경고음 삐~~

 "오지 마! 안 와도 돼. 먹지 마."


 결국 오늘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점심때 시켜먹고 남은 탕수육과 그저께 먹다 남은 카레로 저녁상을 차리며 아이들을 불렀다. 네, 한마디 하고는 상이 다 차려졌음에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식탁에 혼자 앉았다. 그리고 한 숟가락 뜨는데 큰 아이의 발소리가 들린다. 바로 소리를 질렀다. 슬금슬금 둘째 아이도 모습을 보이더니 바로 식탁에 와서 앉는다. 슬그머니 식탁에 온 큰 아이는 크게 맺힌 눈물방울을 꿈뻑이는 눈과 함께 떨구며 맨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욱여넣는다. 


 잘 지내는 거 같아 보이는 일상이 요일도 모르게 지나간다. 입학을 기다리며 책가방을 매 보던 둘째도 더 이상 학교 생활을 궁금해하지 않는 눈치다. 친구와 놀고 싶어 안달하던 아이들은 이미 집 안에서 노는 게 더 익숙한 듯 산책이라도 나가자는 말에 시큰둥하다. 새 학기를 맞이하여 사놓았던 아이들의 봄옷은 입어보지도 못한 채 겨울 내 입었던 내복 아래로 발목이 보인다. 외출복을 입어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8월로 결혼식을 미룬 사촌동생이 미리 장만해놓은 살림을 합친단다. 서운한 삼촌은 가족 식사자리를 마련했다. 조심스러운 때라 룸이 있는 식당을 예약하고 간략하게 인사 자리를 가졌다. 식도 제대로 못 올리고 맏딸을 시집보내는 삼촌의 어깨가 축 처져있다. 


 2주 전 작은 아들의 생일, 이번 주말은 큰 아이의 생일이다. 두 아이를 모두 3월에 낳아서인지 유독 힘들게만 느껴지는 3월이라고 나는 늙은 어미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아빠 없이 한 달 넘게 보내곤 아이의 생일에 잠깐 다녀갔던 남편에게 이번 주말, 큰 아이의 생일에도 오지 말라고 할 수가 없다. 사실 아이들을 핑계 삼아 남편의 힘을 빌리고 싶다. 이런 시간 언제 가져보겠냐고 24시간 꼭 붙어 아이들과 함께 보내며 귀하게 지내보려 했지만 일상이 이런 거라면... 더 이상은 힘들지 싶다.


 얼마 전부터 귀속이 웅웅거린다. 물이 찬 느낌 같기도 하고 머리도 띵띵 아프다. 고민 고민 끝에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병원을 들어서자마자 체온을 재는데 가슴이 쿵쾅거린다. 혹여 37.5도가 넘으면 어쩌지? 여기서 진료를 못 보면 어디로 가야 하지?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던 코로나 확진자들의 동선을 보면서 왜 이렇게 싸돌아 다녔지? 하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이비인후과에 갔음에도 마스크를 단 한 번도 벗지 않고 진료를 보았다. 귀 속만 확인하고 청력검사만 진행했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혹시 몰라 중이염 약을 처방해줬다.


 연애 때도 남편과 5분 이상 통화해본 적이 없는 내가 남편과 영상통화를 30분 가까이한다. 친구와 전화로 수다 떠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봤던 내가 1시간 이상 세상 넋두리를 다 한다. 친구는 상상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고 한다. 봄마다 오는 비염 증상에도 신경이 곤두선다고 한다. 주변에 확진자 동선이 뜨면 혹여 지난번에 떡볶이 사러 갈 때 스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면허 딴지 하루 만에 빗길 고속도로 운전도 거침없이 하고, 행여 사고를 내더라도 덤덤하게 사고처리를 해내던 배포 크던 내 친구는 어디로 간 건지......


  봄 햇볕이 1층 우리 집 베란다까지 들어오고 활짝 핀 꽃향기가 거실까지 풍겨온다. 미세먼지도 없이 맑은 하늘을 보니 아이들과 함께 광합성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천변을 산책했다. 한 시간 남짓 걷고 나니 기분도 상쾌하다. 오랜만에 라이딩을 즐긴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한다. 얼른 들어가 맛있게 밥 먹자고 얘기하는 찰나에 삐~~ 하고 문자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시청]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싶어 해요. 여러분의 잠시 멈춤, 사회적 거리두기(2m 이상, 봄나들이 등 외출 자제)로 딱, 2주만 우리 함께 해요.


 'EBS 온라인 클래스', '온라인 도서관'등 온라인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교육에 보충이 될까 싶은 시스템을 사용하느라 두 아이를 각각 회원 가입하고 세팅한다.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들께서는 혹여나 아이들이 무료할까 싶어 여러 교육 자료나 활동 자료를 보내주신다. 하나하나 챙겨서 아이들과 함께 하면 좋겠지만 그것 또한 너무 많다. 분별하기 조차 힘이 든다. 혹여 4월 6일에 개학을 못 할 경우를 대비해서 오늘은 온라인 원격 교육 학습이 가능한 스마트 기기가 구비되어 있는지를 조사했다. 


 공부는 뒷전이고 하루 두 시간의 게임에만 목을 매는 아이들이 보기 싫어질 즈음 게임기가 고장 났다. 얼씨구나 좋다 하고 A/S를 보냈다. 그리고 나의 자유시간도 함께 날아갔다. 하루 두 시간 남짓 아이들이 게임하는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었다. 심심해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하는 둘째는 내 등 뒤에 꼭 붙어 있다.


 알고 있다. 지금의 이 시간이 지나면 재택근무 시스템이 정착되는데 한몫할 것이다. 멀리 있어서 가보지 못했던 세미나나 강의도 실시간 온라인으로 편리하게 듣고 의견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사교육 없이 아이를 가르칠 수  거 없을거 같았던 부모들도 집에서도 스스로 학습이 가능해 보일 것이다. 마스크 쓰기와 손 씻기가 생활화되면서 유행이던 독감도 조용해지고, 비염으로 고생하던 아이의 콧소리도 한결 가벼워졌다. 


 여전히 현장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런 넋두리는 사치이다. 세상 나만 겪고 있는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 전체가, 아니 지금은 세계 전체가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넋두리랍시고 글을 쓰는 것이 창피하다. 하지만 그래도 쓰기로 했다. 쓰면서 생각이 정리된다. 그래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만 잠깐 괜찮겠지 했던 행동들이 더 조심스러워진다. 잠깐의 봄나들이 후 울렸던 삐~ 소리 같이 마음에도 삐~라고 경고음이 울린다.


 아이들에게 일상을 돌려줘야 하는 의무감이 든다. 그 일상에 나 또한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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