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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Apr 02. 2020

생각을 글로 써주는 기계가 있다면...

아마추어 작가의 게으름에 대한 넋두리 

새벽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매일 새벽 글쓰기를 하자는 다짐으로 맞춰놓은 알람이 1시간 간격으로 울린다. 마지막 울리는 알람에 잠이 깼다. 하지만 이불속에서 나오기가 힘들다. 오늘 쓰려고 했던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글을 이루어 떠오른다. 잊기 전에 적어 놓아야 하는데 오늘따라 햄버거 페티처럼 매트리스와 이불이 나를 놔주지 않는다. 생각한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들을 그대로 글로 적어주는 기계가 있다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신승훈은 싱어송라이터다. 그가 언젠가 방송에 나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공연을 위해 미국 공항에 내렸는데 갑자기 음이 떠올랐다고 한다. 떠오른 악상을 잊어버리는 것은 찰나여서 공항 검색대에 들어가는 가방을 급하게 뒤져 녹음기를 찾아내 녹음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국내 음악방송에서 14주 동안 1위를 해 기네스에 등재된 2집 타이틀곡 ‘보이지 않는 사랑’이다. 여러 번 들은 에피소드지만 작가가 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가 겪은 그때의 애달픔이 더욱 와 닿는다.  


    

Image by RitaE from Pixabay


신박한 글감이나 표현들이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릴 때 술술 떠오르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렇지가 않다. 길을 걷다가, 책을 읽다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 운전을 하다가 불쑥 떠오른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어디에든 우선 적고 본다. 메모지가 없으면 핸드폰의 에버노트를 켜고 적는다. 때로는 작곡가처럼 음성 메모를 남겨놓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항상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땐 떠오른 생각을 붙잡아두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지만 내 기억력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며칠을 고민했던 글의 제목이나 표현을 떠올리고는 당시에는 기특하게 여기지만, 그것을 다시 떠올리지 못한 채 노트북 앞에 앉아서는 머리를 잡아 뜯는다.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것 같아 그 생각이 떠올랐던 자리로 가거나 행동을 다시 하거나 상황을 애써 만들어보기도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에 나오는 피타고라스처럼 머릿속에 칩을 넣고 언제든 나의 생각을 저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예쁜 풍경을 만나면 핸드폰을 꺼내 마구 사진을 찍어놓는다. 그렇게 찍어 둔 핸드폰 속 사진처럼 언제고 꺼내 분류하고 삭제하고 전송할 수 있다면 나도 초록색 지붕 집의 앤 셜리처럼 무궁무진 상상의 날개를 펼쳤을지도 모른다.   

  

나 같은 초보 작가에게 글감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사소한 일상이, 책상 위의 연필이, 밥상 위의 반찬이 모두 글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꾸준히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이다. 그 떠오른 글감들을 무조건 글로 써두고 주제에 맞게 모아주고 분류하면 한 권의 책이 된다. 한데 무조건 글을 쓰다 보면 딱 알맞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그것이 어느 순간 불쑥 나에게 찾아왔을 때 잡아두고 싶은 것이다.

     

결국 이 아침에 책상에 앉아 ‘생각을 글로 써주는 기계’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귀찮음이라는, 게으름이라는 나를 떨쳐내면 잊어버리는 기억을 붙잡아 둘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적어두지 않았다면 나는 또 이 글의 소재를 잊고는 잊어버린지도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는 또 마음먹고 노트북 앞에 앉아 떠오르지 않는 글감과 표현에 대한 하소연을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에 했으리라.


     

Image by Colin Behrens from Pixabay


이불속에서 뭉그적거리며 잠을 떠나보내려 애쓰면서 ‘생각을 글로 써주는 기계’에 대해 떠올렸다. 주저리주저리 글을 쓴다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자판을 두드렸다. 하지만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연필로 끄적여 놓은 메모를 지우듯 한다는 것을 알기에 몇 번의 기지개 끝에 침대 밖으로 나왔다. 세수하는 것조차 귀찮아 빡빡한 눈에 물 몇 방울을 묻히고 책상에 앉았다. 그렇다 해도 게으름을 떨치고 일어나 책상에 앉아 이만큼이나 글을 써 내려간 나를 토닥토닥 칭찬한다. 

     

오늘은 기억을 붙잡아 두는 방법에 관한 혹은 단기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것들을 찾아보아야겠다. ‘생각을 글로 써주는 기계’의 발명은 다른 누군가에게 맡겨두고 나는 떠오른 생각을 최대한 잘 기억하고 빠르게 남겨놓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최선인 듯하다. 물론 귀찮음과 게으름을 적으로 두어야 함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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