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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Apr 06. 2020

철들어 가는 입맛

나이가 더 들고나면 알까?

 우리 가족은 고기를 좋아한다. 밥상에 고기가 올라오지 않으면 반찬이 없다고 느낀다. 엄마랑 나는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찌뿌둥할 때면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 삼겹살이 그 어떤 약보다 엄마와 나에게는 특효약이다. 어릴 적 학원비도 없던 그때도 먹는 것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튼튼하게 잘 컸다. 고기를 즐기지 않는 시댁에서 자란 남편 역시 이제는 누구보다 고기 맛을 즐길 줄 안다.  


   

삼겹살 구이와 김치볶음밥


 나는 고기를 좋아하지만 나물, 김치, 청국장 등 고기를 제외한 한식 음식에는 손이 가질 않는다. 라면을 먹을 때조차 김치를 먹지 않는 나를 보고 엄마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잔소리를 하셨다. 김치를 먹을 때는 삼겹살을 굽고 난 뒤 그 기름에 밥을 볶아 먹을 때뿐이었다. 남은 고기와 김치를 잘게 썰어서 초고추장을 넣고 밥을 볶아서 먹는다. 살짝 판에 눌려서 먹는 볶음밥은 고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내게도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훅 들어왔다. 몇 년 전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며칠 계실 때 엄마는 입맛 없는 할머니를 위해 파김치를 담그셨다. 입맛을 잃어버린 할머니를 대신해서 엄마는 파김치의 간을 보라며 내 입으로 쑥 파김치 한 줄을 넣으셨다. 미끈하고 느글느글한 파김치의 맛을 싫어하는 나는 당장이라도 뱉고 싶었다. 그것을 참고 대충 씹어 꿀꺽 삼켰는데. 어? 이게 무슨 맛이지? 새로웠다. 싱싱한 파 내음이 쑥 코끝을 스치는가 싶더니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혀 뒤를 자극했다. 짠지 싱거운지도 느끼지 못한 채 느껴지는 맛이었기에 파김치 한 줄을 더 짚어서 입에 넣었다. 이번에는 파의 알싸함까지 같이 느껴지면서 맛의 신세계를 경험하는 듯했다.     


 그날 점심은 그렇게 갓 담근 파김치와 삼겹살이 조화를 이루어 완전 꿀맛이었다. 하도 싱싱해서 접시 밖으로 꼿꼿하게 잎을 세우고 있는 파를 계속 집어 먹는 나를 보며 엄마는 말씀하셨다.     


 “너도 나이를 먹나 보다.”     


 나이를 먹어가며 삼겹살이 느끼하게 느껴져 많이 어릴 때만큼 많이 먹지 못했다. 하지만 갓을 같이 넣고 담근 잘 익은 파김치가 느끼함을 잡아주는 그 알싸함을 안다. 그러기에 삼겹살을 먹을 때면 꼭 파김치는 필수다. 물론 마늘장아찌, 양파 장아찌도 상추쌈 속에 쏙 넣어 먹을 줄도 안다.     


 교복에 베인 청국장 냄새가 하루 종일 풍기는 듯해서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엄마가 청국장만 끓이면 화를 내곤 했다. 더불어 된장찌개까지도 싫었다. 국물이 있어야 밥을 먹던 그때, 나는 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을 엄청 좋아했다. 잠시 우리 자매를 봐주시러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우리 집에 오신 때가 있다. 손녀딸이 미역국을 좋아하는 걸 아시는 할머니는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아침상에 올라온 미역국 냄새를 맡고는 식욕이 뚝 떨어졌다. 행여 모래라도 씹힐까 조갯살을 하나하나 발라 미역국을 끓이셨다. 조개를 싫어하던 나는 할머니께서 섭섭해하실까 봐 숨도 안 쉬고 국에 밥을 말아 마시듯 먹었다. 


동해바다에서 잡은 조개와 조갯국


 작년 동해바다에 놀러 가 힘든 줄 모르고 튜브와 물안경에 의지한 채 열심히 발가락 끝의 느낌으로 잡아 올린 게 있다. 바로 조개다. 그 조개를 잘 해감해서 다음날 아침 조갯국을 끓여먹었다. 통통한 조갯살을 발라 먹는데 너무 맛있어서 까무러칠 뻔했다.      


 회사생활 10년 차쯤 해장을 하자며 동료들이 데려간 곳이 바지락 칼국수 집이었다. 전날 무리한 회식 음주에 속이 말이 아니었는데 조개가 들어간 칼국수라니 썩 내키지 않았다. 얼큰하게 라면이나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국물 맛을 최대한 느끼지 않으려고 면만 몇 가닥 덜어서 식혔다. 그리곤 젓가락으로 한 가닥을 살짝 들어 입에 넣었다. 금방 다시 넘어올 것 같았던 국수 가닥이 쑥 들어갔다. 어 이게 뭐지? 이번엔 국물을 살짝 떠서 입에 넣었다. 뒤집어질 것 같았던 속이 아우성을 쳤다. 그 뜨거운 국물을 더 넣어줘.     


 지금은 조개가 없어서 못 먹는다. 조개를 넣어 만든 봉골레 스파게티. 소주 안주로 제격인 바지락 술찜. 조개가 빠지면 서운한 청국장과 된장찌개까지. 그 맛을 알기까지 사십 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나이가 더 들고나면 알까?”     


 겨울왕국 2에서 올라프가 부르던 노래 가사처럼 나이가 들고나니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니?’했던 어른들의 말씀이 이해가 간다. 된장에 박아놓았던 깻잎을 씻어 쪄먹는 맛, 묵은 나물을 들기름과 들깨로 볶아낸 맛, 봄 내음 가득한 냉이무침의 알싸한 맛, 총각김치를 와그작 베어 무는 맛을 이제는 안다.     


 초딩 입맛의 대명사였던 내 입맛도 엄마를 이해해 가는 만큼이나 철이 들어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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