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애 Apr 13. 2020

결벽도 유전?

내가 맨발로 있지 못하는 이유

 나에게는 세 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하나 있다. 생김새도 성격도 다른 우리는 어릴 적 자매로 보이기보다는 친구같이 보였다. 매 해 앞자리를 면하지 못했던 나와는 달리 동생은 제일 뒷자리를 차지했고, 내가 3학년이 되던 해에 동생의 키는 나를 앞질렀다. 남자 짝꿍에게 맞고 울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는 세 살이나 많은 오빠를 혼내주겠다고 앞장서기도 했다. 물론 친구들과 놀러 나가는 나를 따라다니며 성가시게 하는 것도 일과였다.


 그런 동생에게는 내가 병이라 말하는 하나의 허점이 있었으니 바로 결벽증이다. 어릴 적 욕실이 따로 있지 않은 가게에 딸린 방에 살았다. 지금처럼 매일 샤워를 할 수 없었던 시절, 동생은 손등의 때를 벗기겠다고 하도 문질러서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 욕실이 달린 집에 이사해서는 하도 씻어서 온 몸의 각질이 벗겨지기도 했다. 동생의 몸을 본 의사는 당분간 비누도 쓰지 말라는 처방을 내렸다. 여름이면 하루 샤워 세 번은 기본이고 속옷도 그때마다 갈아입었다. 잘 치우지 않는 나와 매번 깔끔을 떠는 동생은 싸우기 일쑤였다.


 이런 동생에게는 깔끔쟁이 엄마가 있다. 어릴 적 엄마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모든 집의 창문을 열고 쓸고 닦으셨다. 가족의 모든 속옷은 하얀 면이어야 했고 수건과 함께  삶아 햇볕에 말리기를 좋아하셨다. 그렇게 말린 수건이나 속옷은 부드러운 게 아니라 풀 먹인 모시옷처럼 뻣뻣하고 까끌했다. 매주 일요일 새벽이면 딸들을 깨워 목욕탕엘 갔다. 탕에 물이 다 받아지기도 전이었다. 깨끗하게 청소된 탕 안에 처음 받아 아직 아무도 담그지 않은 물에 우리를 들어가게 했다. 처음 받아진 탕은 엄청 뜨거웠다. 빨갛게 달아오른 우리의 몸을 엄마는 힘도 안 들었는지 박박 문질렀다. 지금은 목욕탕이 24시간 운영되기에 처음 받아지는 물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 하지만 목욕탕에 들어가자마자 엄마가 하는 일은 수세미에 비누를 묻혀 대야와 의자, 바가지를 닦는 일이다.


 20년 전 엄마는 아빠와 함께 칼국수집을 개업하셨다. 꼭꼭 숨겨져 있는 여느 다른 식당과는 달리 우리 식당 주방은 출입구 바로 옆에 두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주방에서 엄마는 쉴 새 없이 요리를 하셨다. 손님 손이 한 번도 닿지 않은 수저를 매일 두 번씩 삶았다. 업소에서 쓰는 일회용 물수건을 쓰는 일도 없었다. 손님들께 드리는 물수건 조차도 매일 삶아 제공했다. 그렇게 식당일을 하면서 엄마의 관절은 성할 수 없었다.


 식당을 관두고 외손주를 봐주기 위해 우리와 살림을 합쳤다. 엄마는 냉장고를 일주일에 한두 번은 정리했기에 여섯 명의 삼대가 사는데도 크지 않은 냉장고 두대로 충분했다. 몸이 아파 물리치료를 받아가면서도 쓸고 닦기를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발바닥에 무언가 밟히는 걸 싫어하셨다. 동생은 그런 엄마가 걱정이 되어 실내화 신기를 권했다. 이제 그만 좀 쓸고 닦으시라고. 나는 냉장고를 하나 더 들였다. 그만 정리하고 저장하고 싶은 거 맘껏 저장하시라고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엄마는 양말 하나를 널어도 꼭 짝을 맞춰 널어놓으신다. 어차피 걷어서 갤 빨래인데도 보기 좋게 널어야 하는 엄마를 이해하기엔 아직 나는 덜 살았나 싶다.


 이런 엄마에게는 그만큼이나 유난스러운 엄마가 있었다. 엄마와는 달리 사내대장부 같았던 우리 외할머니도 깔끔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름이면 외할아버지는 항상 빳빳하게 풀 먹여 다린 모시옷을 입으셨다. 내 생각에 이건 할아버지의 선택은 아니었다. 노인네가 되면 냄새가 난다며 씻기와 이 닦기를 게을리하는 법이 없으셨다. 좋은 향의 화장품을 쓰면서도 냄새나는 몸에 바르면 소용이 없다 하셨다. 서랍 속은 속옷부터 양말 하나까지 흐트러진 게 없었다.  


 이런 할머니를 이해하는 손녀딸이 하나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요양병원에서 간신히 일주일에 한 번 씻겨주는 게 전부였다. 몸을 일으킬 수 없는 할머니는 양치도 힘들었다. 이런 할머니의 불편함을 알아 엄마는 매주 주말 할머니를 찾아가 목욕을 시켜드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남편과 나는 할머니가 드실 만한걸 사 들고 면회를 갔다 수다만 떨고 돌아왔다. 내가 다녀간 뒤 내 동생도 할머니를 뵈러 갔다. 그리곤 가재 수건으로 할머니 얼굴과 온몸 구석구석을 닦아드렸다. 면봉까지 동원해 할머니 입속, 몇 개 남지 않은 이 사이사이도 닦아드렸다고 한다. 깔끔이 병이라 비위가 좋지 않음에도 깔끔한 할머니의 불편함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뒤 할머니는 눈을 감으셨다.


 할머니의 염이 끝나고 엄마는 염을 진행해주신 분께 감사의 인사를 했다. 대렴 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아주 예쁘고 깔끔하게 지어진 매듭은 할머니가 흡족해하실 만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했다. 언제 그리 정리하셨는지, 버릴 옷 하나 없이 미리 다 정리해 두셨다고 한다. 딸, 며느리가 입을 만한 것들 몇 개와 혹여 집에 다시 돌아오시게 되면 입을 내복과 속옷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할머니의 성격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나는 동생과 엄마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곤 한다. 엄마랑 동생 둘이 있으면 수도세와 온수비가 많이 나온다고. 엄마가 며칠 집을 비우면 우리 집 세탁기는 일주일에 세 번 돌려도 적당한데, 엄마는 그걸 매일 돌린다고. 세제도 금방 금방 닳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엄마는 락스 방울이 튀어 얼룩무늬가 생긴 옷을 입고 행여 손주 녀석 비염이 도지기라도 할까 수시로 먼지를 닦고 이불을 빨아 너신다. 


 어제는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러 서울에 갔다. 며칠 뒤에 있을 동생의 서른일곱 번째 생일이라 밥이라도 한 끼 먹일 셈이었다. 조카들의 축하를 받으며 밥을 먹는 중간중간에도 동생은 연신 식탁 위의 빈 그릇을 치우고 탁자를 닦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나는 그 결벽 유전을 물려받지 않았다는 거다. 어릴 적부터 보고 배운 게 있어 그 버릇이 어디 가겠냐만은 그래도 그리 유별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 또한 발바닥에 밟히는 먼지가 싫어 맨발로는 바닥을 딛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철들어 가는 입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