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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May 28. 2020

첫째로 산다는 것

첫째 엄마가 첫째 아들을 바라보며

'첫째로 산다는 것', '둘째로 산다는 것'어떤 제목을 먼저 붙일까 고민했다. 우리 집 두 아이의 입장에서 나의 어릴 적을 떠올려보며 글을 쓰고 싶다 생각했다. 그러다 둘의 입장을 나눠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첫째의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멍군이 잘 데리고 놀아라."               


 온라인 학습이 끝나면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동네 친구들과 함께 아파트 단지를 종횡무진 한다. 베란다 밖으로 목을 내놓고 아이들에게 항상 당부하는 말이다. "네"하고 장군이의 친구들이 함께 대답한다. 장군이가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은 외동이거나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을 가진 막내이다. 동생이 있는 친구가 없다. 그러다보니 항상 동생을 데리고 놀아야 하는 장군이는 못마땅하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할 수 없이 동생을 데리고 다닌다.

               

 3명의 장군이 친구들이 너프건 전쟁을 하기로 했다. 2대 2로 편을 가르기에 한 사람이 부족했다. 아이들은 동생인 멍군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속도가 빠른 멍군이는 형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덩치나 키로 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보기에도 너프건 전쟁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게 아이들은 나와 함께 마트에 가려던 멍군이에게 사정을 해서 함께 놀았다.  

             

 조금 떨어져 있는 마트를 가고 있는데 멍군이에게 전화가 왔다. 울먹이며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였다. 형아들이 모두 자기를 집에 혼자 두고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는 것이다. 혼자 있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일곱 살이었다. TV를 보고 있으라고 아이를 달랬다. 그리고 장군이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는 친구들과 신나게 천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화가 치밀었다. 필요할 때 사정하고 필요 없을 때 동생을 버려둔 첫째를 잘 못 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장군이는 친구의 집에서 파자마파티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보내지 않았다. 장군이의 친구들까지 와서 죄송하다며 사정했지만 화가 가시지 않는 나는 첫째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 뒤부터 장군이와 친구들은 동생을 잘 데리고 놀아야 하는 암묵적인 책임이 지어졌다.       

        

 멍군이는 온라인 학습이 끝나자마자 수시로 밖을 내다본다. 형의 친구들이 보이기가 무섭게 핼멧과 마스크를 챙겨들고 나간다. 형의 수업이 끝나지 않았지만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놀 친구가 없는 형들은 동생을 기꺼이 받아준다. 하지만 그 형들에게도 멍군이는 귀찮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1학년 동생은 형들의 스피드를 따라갈 수 없다. 형들이 생각하기에도 1학년에게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곳은 피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된다. 멍군이를 데리고 놀아야 장군이와도 놀 수 있기에 이제는 당연한 듯 되었다.    

           

 "아까 천변 간다더니 왜 안 갔어?"     

 "멍군이 때문에 못가잖아. 다른 애들은 다 된다는데......"             

  

 투덜대는 첫째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형제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혼자 집에서 놀아야 하는 외로운 외동보다는 좋지 않은가. 적어도 집에서 혼자 심심할 시간 없이 이 길고 긴 코로나를 버틸 수 있지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하다가 나의 어린 시절이 잠시 떠올랐다.               


 나는 첫째다 그리고 아래로 3살 터울의 여동생이 하나 있다. 내 아들도 첫째다 그리고 아래로 3살 터울의 남동생이 하나 있다. 자매, 형제라는 것을 빼면 모든 게 비슷하다. 첫째는 까무잡잡하고 삐쩍 마르고 또래보다 작다. 둘째는 희고 통통하며 또래보다 월등하게 크다. 내가 5학년 쯤 되었을 때 동생은 내 몸무게와 키를 모두 추월했다. 올해 4학년이 된 첫째와 1학년이 된 둘째의 몸무게는 2kg 밖에 차이가 안 난다. 그런 덩치 큰 동생도 동생은 동생이다.               


 어릴 적 내 동생은 일을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챙겨야 하는 존재였다. 그때는 동네친구가 많았다. 뒷산으로 운동장으로 골목으로 아이들과 함께 종횡 무진했다. 아이들 무리를 놓치기라도 하면 사방 곳곳을 찾으러 다녔는데 그 때마다 동생은 꼭 내 뒤를 쫒아왔다. 덩치가 큰 동생이었지만 왜이리 못 따라 오는지 몇 번을 돌아봐도 저만치 뒤에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 거리가 좁혀지지 않으면 동생은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엉엉 울었다. 빨리 따라 오기나 할 것이지 거리에 앉아 울고 있는 동생이 참으로 못마땅했다. 동생을 달래서 같이 가야 했기에 나는 친구들 놓치기 일쑤였다.             

   

 친구 집에 가서 놀 때도 동생은 늘 함께였다. 저녁때가 되어 친구 집에 저녁밥상이 차려지면 나는 눈치껏 친구 집을 나왔다. 헌데 눈치 없고 식탐이 많은 동생은 남의 집 저녁상에 바짝 다가가 앉았다. 난 그렇게 눈치 없는 동생이 창피하고 싫었다. 저녁을 먹고 가라는 친구 엄마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상에 앉으면 동생은 맛있는 반찬만 골라 며칠 굶은 애 같이 먹었다. 그런 날이면 집에 가서 엄마께 불만을 토로했다.        

       

 이랬던 나도 엄마가 되고 보니 첫째와 둘째 각각이 아닌 형제 한 덩어리로 보게 된다. 놀 때 같이 놀고, 먹을 때 같이 먹고 그게 가족 아니겠나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라며 자기만의 세계가 열린다. 그 영역에는 엄마도 동생도 귀찮아진다. 친구들과 고스란히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하고 싶어진다. 학습을 빨리 마치고 친구들과 맘껏 놀겠다는 첫째에게 오늘은 자유를 주기로 했다.        

       

 "오늘은 멍군이 엄마가 데리고 놀 테니깐 넌 맘껏 놀아."               

 "진짜? 야호, 빨리 공부하고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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