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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Jun 02. 2020

둘째로 산다는 것

첫째 엄마가 둘째 아들을 바라보며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 온라인 학습은 10시 30분이면 끝이 난다. 학습지까지 풀고나도 11시를 넘기지 않는다. '오늘의 할 일'이 다 끝난 거다. 지금부터 형아의 '오늘의 할 일'이 끝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두 아이 모두 '오늘의 할 일'이 끝나야 만 하루 한 시간 허용되는 게임이나 유튜브 시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유롭다 못해 느긋한 형을 기다리는 일은 둘째 멍군이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씩 집 밖으로 나온다. 형아들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마스크와 헬멧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간다. 같이 놀 친구가 다 모이기 전, 아쉬운 형아들은 세 살 차이가 무색할 만큼 성장 속도가 빠른 동생을 기꺼이 받아준다. 하지만 조금 멀리라도 나가 놀라치면 귀찮은 존재가 된다. 그럴 때면 멍군이는 기운 빠진 어깨를 하고는 집으로 들어온다.


 멍군이가 세 살이나 많은 형아의 친구들과 노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실 동네에는 멍군이의 친구가 없다. 아니 같이 놀아 본 친구가 없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또래와 놀기보다는 형아의 친구들과 놀았다. 집에 친구를 초대해 놀아도 항상 형아의 친구들이었고, 캠핑을 같이 가도 항상 형아 친구네 집과 함께 갔다. 어느 날 멍군이는 생전 내지 않던 목소리를 냈다.


 "엄마, OO은 OO네 집에 가서 놀았데. 나도 놀고 싶은데."


 문득 미안함이 밀려왔다. 잘 알지 못하는 멍군이의 유치원 친구들을 수소문해서 하루 집으로 초대했다. 자신의 친구들이 집에 온 게 처음이어서인지 아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이 이벤트도 일회성으로 끝났다. 여전히 멍군이는 동네에서 놀만한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 입학이 연기되면서 반 친구조차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더욱 그렇다.


 아이가 둘이면 모든 일정이 첫째에게 맞춰진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첫째에게는 어떤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나의 세 살 터울 여동생은 어릴 적 앨범을 들춰볼 때마다 볼멘소리를 한다. 모든 집안 어른들이 언니인 나를 안고 찍은 사진은 한가득인데 자신을 안고 찍은 사진은 없다는 것이다. 사실 동생은 백일사진, 돌사진도 없다. 동생이 태어날 무렵 가세가 기울었다. 다행스럽게도 동생은 까탈스럽게 자란 나와는 달리 순둥순둥 하게 컸다. 엄마, 아빠는 일하러 나가시느라 우리 둘을 챙겨주시기엔 힘이 들었다. 그래도 모든 일은 내 위주로 돌아갔다. 동생은 항상 "실애 엄마", "실애 아빠"로만 불리는 걸 못마땅해했다.


 둘째는 욕심이 많다. 무슨 일이건 언니, 형보다 잘하고 잘 보이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잘 먹고, 어깨 너머로 배우기도 잘 배운다. 그런데 어른들은 행여나 동생이 첫째를 이겨먹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형아보다 동생이 더 커버릴까 봐, 형아보다 더 공부를 잘할까 봐. 잘 먹고 잘 크고 뭐든 알아서 잘하는 아이에게 칭찬을 아낀다. 첫째의 눈치를 보면서, 첫째가 혹여 기가 죽지 않을까 싶어서 둘째의 기특함을 무시한다.


 며칠 째 형아들의 큰 자전거를 따라다니느라 선채로 자전거를 타는 멍군이는 저녁때가 되면 코피가 나고 녹초가 된다. 형아가 타다 물려준 자전거로 형아의 새로 산 큰 자전거를 따라가는 것은 힘이 든다. 형이랑 몇 센티 차이 나지 않는 키지만 형아가 작아져 물려준 자전거라도 기어 달린 자전거를 물려받아 힘든 줄도 모른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도 형이 쓰던 가방을 메고 가겠다는 착한 동생이다. 1학년이지만 온라인학습부터 학습지까지 스스로 챙겨서 하는 믿음직한 아이이다.


 코로나가 물러가고 반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 꼭 둘째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 기회를 마련해줘야겠다. 오늘 저녁은 멍군이가 좋아하는 올갱이국을 끓여줘야겠다. 그리고 같이 이불속에 누워 꼭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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