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를 인정한다는 것
굳게 믿었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다 이미지 메이킹이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약간 충격을 받았다. 그럼 에니어그램 검사에서 줄곳 완벽주의자인 1 유형이 나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이나 일본인들의 경우에는 자라면서 받은 교육이나 기대감으로 인해 만들어진 1 유형이 많다고 한다. 학창 시절 지각 한번 없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숙제도 꼼꼼하게 해 오는 학생들이 보이는 특징이 1 유형이다. 다시 나를 돌아봤다. 어쩌면 나는 1 유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함이 강요되고 모범적인 아이로 보이고 싶었던 나. 더해서 성실이라는 이름의 포장이 감싸고 있는 나.
어릴 적 우리 집은 버스정류장 앞에서 슈퍼를 했다. 조그만 방 하나가 딸린 가게였다. 손님이 오면 방문을 열어 계산을 해주는 형태였다. 그 옆엔 세면과 세탁 그리고 조리를 함께 할 수 있는 옛날 식 입식부엌이 있었다. 가게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문도 없이 커튼으로 간신히 가려진 곳이었다. 화장실은 가게를 나와 뒷 골목에 연결된 마당 구석 공동 화장실을 이용했다. 당연히 공부방을 따로 가지지도 않았다. 다행히 방에 연결된 다락방이 있었는데 반에서 가장 작았던 내가 허리를 펴고 서서 다닐 수 있을 만큼의 높이가 있는 다락방이었다. 그 다락방에서 옆 피아노 학원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곤 했다.
수시로 손님이 올 때마다 방문이 열리는 곳에서 나는 숙제와 공부를 했다. 학교 친구들이 동네 친구들이었고 그 친구들의 부모님은 우리 집 단골이었다. 방문이 열릴 때마다 보여지는 나는 흐트러진 채 있을 수 없었다. 우리 엄마 또한 그 조그만 부엌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씻도록 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목욕탕에 가서 때를 벗겼다. 실내화도 항상 새하얗게 유지해야 했기에 주말이면 하얀 실내화를 구멍이 나도록 박박 문질러 빨아야 했다.
당시 나는 꽤나 그림도 잘 그리고 글짓기도 잘했다. 각종 백일장이나 그림대회에서 상을 받아왔다. 매월 보는 월말고사는 당연하고 수학경시대회, 과학경시대회에 나가서도 상을 받아왔다. 제대로 된 학원 한번 다니지 않고 매 달 적어도 한두 개의 상을 받아오는 나는 우리 엄마, 아빠의 자랑이었다. 물론 대놓고 사람들에게 자랑하시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상을 받았단 사실을 알고 쫒아 온 친구의 엄마 앞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시는 게 느껴지곤 했다. 나는 그게 좋았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나는 나만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만들었다.
이것이 내가 1 유형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착하고 올바른 것을 좋아하는 모범적인 아이. 자기가 잘 일을 알아서 잘하는 아이. 부지런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아이. 잘못된 것이 있으면 스스로 바로 잡는 아이. 전형적인 1 유형의 아이의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그런 모습을 보고 칭찬해줄 때, 부모님이 뿌듯해할 때, 친구의 엄마가 나를 비교하며 친구를 나무랄 때가 좋았다.
그렇게 완벽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겨울 방학, 책을 베껴 써오는 숙제가 있었다. 옆집 언니가 글씨만 이쁘게 써가면 상을 준다고 했다. 그래서 엄청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썼다. 그리고 상을 받았다. 지금 나의 손 글씨는 악필 중에 악필이다. 상을 받겠다는 목표는 이루었다. 하지만 꾸준히 글씨를 연습하지는 않았다. 그림을 잘 그려서 상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지금 그림을 잘 그리진 못한다. 딱 상을 받을 만큼만 했다. 돋보이는 그런 것만 중요했다.
내가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었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봐주기를 바라고 내가 스스로 씌운 가면이다. 그 가면 안에서 나는 온갖 응큼한 생각을 한다. 진실이 결여된 완벽과 책임감과 성실이다. 앞선 글에서 나는 성실이라는 말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성격론적으로 성실이라는 의미는 진실성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참되고 바른 성질이나 품성.
그렇게 보면 나는 그리 성실하지 않다.
이제 나는 나를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마흔이 가까워서야 나는 스스로 내가 씌운 가면을 벗고 성실이라는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발가벗겨진 나를 이제는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나는 남은 반생을 참다운 나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