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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Jul 15. 2020

잠재적 가해자, 잠재적 피해자

누구를 조심시켜야 하는가?

 심란하고 심란하고 심란하다. 며칠 전부터 이 글을 쓰고 싶었는데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퇴근하는 남편을 붙잡고 얘기하며 정리하려 했지만 남편은 내가 ‘거시기가 거시기했는데 거시기했어.’라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다고 했다.  전혀 정리되지 않은 날 것의 내 표현을 남편은 그렇게 정리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서야 이렇게 커서를 앞에 두고 앉게 되었다.

     

 이전 회사 여자 직원들과 만남이 있던 저녁이었다. 누군가 박원순 시장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우리는 일제히 뉴스를 확인했고 실종의 이유가 성희롱 고소라 했다. 나는 며칠 전부터 여성가족부에서 인증하는 성폭력 전문상담원 교육과정을 듣고 있다. 이제 겨우 100시간 중 2번의 수업을 들었을 뿐이다. 전 날 강의에서는 여성운동과 인권현장에 관해 우리나라의 여성인권운동의 흐름을 들었다. 그 강의에서 여러 차례 박원순 시장이 언급되었다. 인권변호사로 서울대학교에서 신 교수가 조교를 성희롱한 사건을 변호해 승소한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성추행 의혹 고소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다.

     

 다음 날 같이 강의를 듣는 선생님들은 이 안타까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일선에서 자주 이와 같은 일들을 접하고 계셨던 강사님들은 이 사건에 대해 말을 아끼는 눈치였고, 우리도 애써 그 사건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 아직은 어떤 것도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었고, 누군가는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폭력 상담소에서 오래 계셨던 분들이 느끼는 그 비통함은 마스크 안에 가득 찬 습기만큼이나 눅눅했다.     


 서울특별시장으로 5일장을 치르는 게 맞네 아니네 하는 논의가 무색하게 5일은 금방 지나갔고, 그 날 고소를 했던 피해자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 피해자를 대변하여 나온 이들 중 낯익은 얼굴이 있었으니 사건이 있기 전날 강의를 해주었던 강사님이었다. 담담하게 피해자 편지를 대독 했다.     


 나는 그 강사님께 당시 약간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질문을 했다. 하나는 다수의 사람 앞에서 불편함을 꺼내 놓을 때 분위기를 망칠까 염려되어 말을 돌려 이야기 하나 당사자는 그만큼 센스가 없다는 것. 또 하나는 남자를 꼭 잠재적 가해자로 봐야 하냐는 것이었다. 두 번째 질문을 할 때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여성이 아닌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우리는 크면서 ‘조심해’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왔다. 항상 약자의 입장에서 들어왔던 말이다. 차 조심하라는 일상 적 이야기부터 밤길 조심해라, 너무 달라붙는 옷을 입지 마라, 너무 늦게 다니지 말라는 등 잠재적 피해자의 입장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모든 일은 일어나고 난 뒤 수습하는 것보다 예방이 먼저다. 하지만 그 예방은 언제나 약자의 몫이었다. ‘성’과 관련된 사항에서는 그 약자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예방은 잠재적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회사 다니며 의무로 듣는 성희롱 예방 교육이나 아이들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은 점차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조심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아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만들었다는 불편함이 앞섰던 마음은 가해 예방차원의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마음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이번 일을 접하면서 위선과 권력 앞에 선 사람이 저지르는 악행을 누가 예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도로 아미타불이 된 듯하다. 애써 굳히려 했던 나의 신념이 다시금 흔들린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사람 많은 지하철을 탈 때는 꼭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있으라고 이야기해준다. 이제 4학년이 된 아들에게는 여성의 이차성징을 이야기해주며 체육시간에도 공을 조심히 던지라 일러준다. 내 가족에게 불거질 오해를 막고자 하는 의미다. 하지만 나는 이 밤에 혼자 사는 여동생에게 술 마시고 늦게 다니지 말라고, 밤길 조심하라는 당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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