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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Jul 01. 2020

내 건망증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건망증이 있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휴대폰을 어디 두고 오는 정도는 그냥 귀엽게 봐준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아침 알람을 듣지 못하고 출근한다. 회사 화장실에서 평소에 듣던 라디오 소리를 듣고 휴대폰을 찾게 되는 일은 일도 아니다(라디오를 알람으로 맞춰 놓곤 했다). 사무실 안에 “삑삑”울려대는 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은 내 자리로 휴대폰을 가져다주었다. 구글 휴대폰 찾기 기능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이다. 회식 한 식당 화장실에서 내 휴대폰을 찾아오는 친구도 있다. 내 모든 물건에는 네임 스티커가 붙어 있다.     


 진짜 심하다 싶은 경우들이 있다. 이걸 에피소드로 남기려고 보니 너무 심하지 싶다. 그래서 건망증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건망증 (健忘症) 

[명사][의학 ] 경험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어느 시기 동안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또는 드문드문 기억하기도 하는 기억 장애.      


두산백과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건망증[ amnesia , 健忘症 ] 

기억장애의 하나로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리는 정도가 심한 병적인 상태     


‘기억 장애’, ‘병적인 상태’ 이런 말은 나를 너무 당황스럽게 만든다. 우린 이따금 깜박깜박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내 병적인 정도를 확인해보고자 에피소드를 적어본다. 참고로, 위에 말한 것과 같이 휴대폰을 비롯하여 우산, 지갑 정도는 가볍게 패스하겠다.     


episode 1.

 시댁 식구들과 함께 캠핑을 했다. 공주 마곡사 근처 캠핑장을 예약했다. 엄청 더운 날이었고 바람 한 점 없었다. 더구나 마곡사 계곡물은 흙탕물이었다. 제대로 수영도 할 수 없었다. 땀이 비 오듯 흘렀고 어찌어찌 캠핑을 마치고 공주 시내에서 냉면을 먹었다. 그리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천안 즈음에서 자두를 샀다. 길거리에서 파는 시큼한 자두를 먹으면 내가 계획했으나 그리 흡족하지 못했던 캠핑에 대한 기억을 조금 지워버릴 수 있을 거 같았다. 자두를 파는 노점 앞에 남편은 차를 세웠다. 자두를 사려고 내리려는데...... 신발이 보이지 않는다. 캠핑에 최적화돼 있는 하얀 크*스 신발.      


 나는 차를 타면 버릇처럼 아빠 다리를 한다. 겨울에는 시린 발을 온열 시트에 맡긴다. 여름에는 땀난 다리는 통풍 시트에 말린다.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 나는 계속 아빠 다리를 한 상태였다. 내리려는 찰나 보이지 않는 내 신발. 그 신발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기억을 더듬는다. 분명 냉면집에서 나와 주차장까지 걸어왔다. 신발은 당연히 신었을 거다. 그런데 차에 없다. 그랬다. 나는 차에 올라타기 전, 집에 들어가듯 신발을 벗고 차에 올라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시트 위에 두 다리를 올렸다.     


 아마도 그 신발은 우리가 주차했던 차 옆에 아주 나란히 벗어져 있겠지?          


episode 2.

 남편이 승진했다. 그리고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8년의 주말부부, 3년의 동거 끝에 다시 주말 부부가 시작된다. 지방으로 내려가기 전 주말 오전. 매번 가던 단골 미용실에서 남편은 이발을 했다. 평소처럼 같은 건물 1층에서 떡볶이로 점심을 해결했다. 아이들을 집에 바래다주고 남편의 살림을 장만하러 이*아에 갔다. 장작 4시간에 걸친 쇼핑을 끝냈다. 차에 짐을 싣고 출발하려는데 가방이 보이지 않는다. 내 가방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기억을 더듬는다. 내 가방에는 지갑과 읽을 책, 노트북 등이 들어있다. 쇼핑에는 전혀 필요 없는 것들이기에 차에 두고 내렸다. 지갑은 삼*페이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차에 없다. 집에 전화를 했다.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줄 때 가방도 같이 두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집 앞에서 아이들을 내려줬고 집에 들어 간 기억이 없다. 미용실에 두고 왔나? 남편이 머리를 하는 동안 아이들과 책을 읽었고, 읽은 책을 가방에 넣어 나온 기억이 있다. 그럼 떡볶이집?     


 떡볶이 집을 검색해서 전화한다. 혹시 검은색 백팩을 보셨나요? 가방 하나를 보관하고 있단다. 도대체 나는 그 큰 가방을 어떻게 두고 왔을까?          


episode 3.

 퇴직을 하고 창업 교육을 들었다. 그 날은 마지막 PT 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새벽 2시가 되어서 PT 자료를 보내고 잠깐 눈을 붙였다. 스*벅* 오픈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아침 7시 오픈과 동시에 들어가서 마지막 PT 점검을 했다. 2시간 뒤, 발표가 있을 창업센터에 도착했다. 시작보다 1시간은 빠른 시간이었다. 매니저 님들과 발표순서 등은 맞춰보고 있는데 뭔가 허전하다. 난 무엇을 잊은 걸까?     


 그것은 바로 차다. Tee가 아닌 Car다. 아침 일찍 나오면서 차를 끌고 나왔다. 커피숍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마지막 PT 준비를 마친 나는 오랜만에 신는 뾰족한 힐에 내 몸을 맡긴 채 창업 센터까지 걸어왔다. 그곳에 핸드폰을 두고 온 적은 여러 번 있지만 차는 처음이다. 어떻게 나는 그 차를 맨 정신에 두고 왔을까?    

      

 진짜 부끄럽지만 자잘 자잘한 것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도 아주 잘 잊는다. 그냥 우리 남편은 나를 ‘안면 인식 장애’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집과 내 아이들을 잃어버린 적은 없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이렇게 잊는 일들이 생기면서 나는 많이 생각해봤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항상 체크리스트와 스케줄표, 알람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잊지 않기 위해 계획을 꼼꼼하게 세운다. 일정이 생기면 바로 핸드폰에 알람을 맞춰둔다. 이건 내가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일을 하면서 불쑥불쑥 떠오르는 다른 기억들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위에 나열한 에피소드들은 미리 계획을 하거나 알람을 맞출 수 없는 일들이다.     


 되돌아보면 나의 건망증이 심해지는 경우는 어떤 패턴을 갖는다. 바로 나에게 아주 신경 쓰이는 일이 있을 때다. 내가 계획한 시댁과의 캠핑이 순조롭지 않았을 때. 남편의 승진과 함께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챙겨 보내야 할 때.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있었을 때. 그 밖에 자잘 자잘한 잊음에도 항상 중요한 순간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항상 모든 것에 완벽함을 원한다. 조금의 오차가 용납이 안 된다. 핸드폰을 가방을 차를 잊을지언정 기안을 못 맞추거나 시간에 늦거나 약속을 잊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 신뢰는 나의 완벽함의 바탕이 된다. 그런 나에게 있는 이런 허당은 조금은 인간미가 느껴지는 부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도 나는 항상 불안하다.     


 어제도 나는 식당에 휴대폰을 두고 와서 100m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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