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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Jun 24. 2020

수학 푸는 엄마

스트레스 풀 때는 수학

 생각이 많은 오늘이다. 오랜만에 외출이 계획되어 있는데 좋으면서도 설레면서도 가슴 찡한 그런 날이다. 운동을 하려 일찍 일어났으나 내리는 비 때문에 주저했다. 찌뿌둥하다는 핑계로 살짝 스트레칭만 했다. 매일 아침 마시던 ABC 주스도 오늘은 건너뛰었다. 달달하게 설탕을 잔뜩 넣어 팔이 아프도록 3000번을 저어 만든 달고나 커피를 들고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수학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다.


"이 문제집 많이 나가나요?"


"많이 나가긴 하는데, 아이의 수준을 알아야 문제집을 고를 수 있어요."


"아! 제가 풀려고요."


그렇게 중학교 1학년 수학 문제집 하나를 골라 들고 집에 왔다. 적당한 설명이 있고 문제는 많으면서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골랐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8년의 수학 과외 경력이 있지만 제대로 중등 수학을 만나는 건 12년 만에 처음이다. 방송통신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다니는 엄마의 수학책을 보면서 '헛'했던 경험이 여러 번이라 신경써서 문제집을 골랐다. 그렇게 나는 수학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마흔 아줌마가 수학 문제를 풀겠다고 생각한 건 단순하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다. 퇴사 후 1년 3개월이 지났다. 뭐라도 이루었어야 할 시간이라 생각되지만 나는 그때 그대로 멈춰있다.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글을 쓰려해도 껌뻑이는 커서만 바라보고 있기 일수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복잡할 것도 없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그런 찰나에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생각났다. 영화 속에서 엄마들이 모여 자신의 전공 이야기를 한다. 수학 문제를 푼다는 엄마가 나온다. 바로 그거다. 수학 문제 풀기.


 머리가 복잡하고 무엇을 할지 모르겠을 때, 나는 수학 문제집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그런 문제를 끌어안고 있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래서 난 수학이 좋다. 머리를 싸매고 있으면 결국 답이 나오는 수학이 좋다. 답이 안 나올 땐 답안지를 보면서 따라가면 결국 답이 나오는 수학이 좋다. 급하게 답을 보지 않고 끙끙대는 내 모습도 좋다. 


책에 질문하면 답이 나온다. 이런 말을 자주 하는 나다. 고민이 있으면 그 고민을 풀어 줄 책을 찾아 읽는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 딱 맞는 해결책을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꼭 해답이 되어주지는 않는다. 어떻게 해석해서  어떻게 풀었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그래서 어떤 때는 "너 이렇게 해"라고 누군가 나에게 지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명리 심리학>을 쓴 신경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는 그런 이유로 사람들이 정신과를 찾기보다는 점집을 찾아가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나에게 수학 풀이는 점집과 같다. 수학은 '답정너'다.


수학을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는 아들은 내가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는 것을 처음 봤을 때 아연실색했다. 설마 저걸 나에게 또 풀라고 시키는 것은 아닐까 내심 초조했을 거다. 스트레스를 풀라고 수학을 푼다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요즘은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는 나를 보면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히 그냥 둔다. 지금 건들면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안다. 


오늘은 '유리수와 정수'를 지나 '문자와 식'을 만났다. 학교 다닐 때 가장 좋아하던 x, y 기호를 보니 설레었다. x와 y에 들어갈 수를 찾고, 사분면 세상에 그것을 찍어 넣고 선으로 있다 보면 이게 내 인생의 곡선인가 싶기도 하다. 배울 때는 절대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철학적 의미가 찾아온다. 1차식으로만은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의 굴곡을 두고 나는 중1 수학이 아닌 중2, 중3 수학을 넘어 무리수까지 도전해보련다. 그만큼의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기를 바라는 모순을 가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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