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속 메시지를 찾으며...
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날 때면 아이는 항상 묻는다.
"엄마, 얼마나 남았어?"
매번 출발하자마자 묻는 질문이다. 멀미를 자주 하는 아이이기에 차를 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가 보다 싶었다. 내비게이션에도 꼭 도착 시간이 아닌 남은 시간을 표시해달라고 요구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왜 매번 출발하자마자 얼마나 남았나를 묻느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도 그렇다잖아. 어린 왕자가 네시에 온다면 세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한다고. 나도 도착할 시간까지 두근두근하면서 그 행복을 즐기고 싶어서 지."
어린 왕자의 이야기까지 떠 올리며 도착할 곳을 상상하며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겠다는 아이의 말이 내가 생각했던 이유와 달라 살짝 당황했다. 내비게이션에 남은 시간을 보면서 여우가 어린 왕자를 기다리며 행복해하듯, 멀미를 하며 가는 차 안에서 다가올 목적지의 행복을 맞이할 의식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다. 멀미를 하며 힘들었을 시간을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에 기대어 자신을 길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어린 왕자는 다시 거기로 갔다.
"같은 시간에 왔으면 더 좋았을걸." 여우가 말했다. "가령,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시가 되면 난 벌써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게 되겠지! 그러나 네가 시간을 정하지 않고 아무 때나 오면 나는 몇 시부터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 하는지 통 알 수가 없잖아‥‥‥ 그래서 의식이 필요한 거야."
아이는 유독 어린 왕자를 좋아했다. 2학년 때는 밤마다 함께 읽었던 어린 왕자를 출판사 별로 사 모았고, 학교에 갈 때도 들고 다녔다. 나 또한 어릴 때 읽었던 어린 왕자를 아이와 함께 다시 읽으면서 기억하지 못했던 새로운 부분들을 보았다. 그리고 단정했다. 이 책은 아직 우리 아이가 읽기에는 어렵겠다고, 그래서 나는 필사를 해서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다시 읽어보라고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너무 짧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린 왕자는 어른을 위한 동화가 아니었다. 어린이만을 위한 동화도 아니었다. 그냥 그때그때 읽을 때마다 다르게 와 닿는 그 무언가가 있는 그런 철학이었다.
내가 어릴 적 읽었던 기억 속 어린 왕자에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이나 '길들여짐'에 대한 이야기만이 남아있었다. 내가 진짜 전편을 다 읽었는지도 사실 모르겠다. 그냥 어디서 주워들은 것일 수도 있다. 아이가 2학년 그러니까 내가 회사에 다니며 쳇바퀴 돌듯 회사, 집을 오가던 그때는 어린 왕자가 찾아갔던 여섯 개의 소행성에서 보여주는 풍자적 이야기에 빠졌다. 그리고 이것을 아이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단정했다. 회사를 관두고 일과 살림 가운데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나는 우물을 찾으며 어린 왕자가 하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되돌려 읽었다.
"사람들은 급행열차에 올라타지만 자기가 무엇을 찾으러 떠나는지 몰라. 그래서 법석을 떨며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거야 ‥‥‥ "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럴 필요 없는데‥‥‥ "
"아! 그래서 엄마는 '내가 조금만 더하면 돼요.'라고 말하면 '그게 언젠데?' 하는구나. 그러니까 나는 이제부터 '몇 시 몇 분에 끝나요.'라고 엄마한테 숫자로 말해줘야 하는 거야."
내가 다시 꺼내 든 어린 왕자를 침대에 엎드려 읽던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그렇게 쓰여있네.
내가 B612호 소행성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이토록 자세히 이야기하고 그 번호까지 일러주게 된 것은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하는 것이다. 당신이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면 그들은 제일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도무지 묻지를 않는다. 그들은 "그 애 목소리는 어떻지? 그 앤 무슨 놀이를 제일 좋아하지? 나비를 수집하니?" 하고 묻는 법이 절대로 없다. "나이는 몇 살이지? 형제는 몇이고? 몸무게는? 아버지 수입은 얼마지?" 하고 물어대는 것이다.
어린 왕자가 나와 우리 아이에게 주는 메시지와 깨달음은 노지에서 수확한 한 박스 속의 귤처럼 때로는 달게, 때로는 시게 다가온다. 그때그때마다 다른 맛으로 다가올 어린 왕자를 나는 평생 곁에 두고 읽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몇 년 뒤 중학생이 될 우리 아이는 또 어떤 맛으로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될지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