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을 하려고 TV를 켠다. 예전에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려고 뜨개질을 했다.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는 것은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 아무 실용성도 없이 TV를 보고 있는 것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드라마를 보려면 뜨개질거리를 손에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었다. 뜨개질을 하기 위해 TV를 켠다.
TV를 켜고 무엇을 볼까 채널을 돌린다. 딱히 좋아하는 취향의 방송은 없다. 즐겨 보는 드라마나 시리즈도 없다. 간혹 남편이 재미있다고 추천해주면 찾아서 본다. 뜨개질을 하면서 봐야 하기 때문에 자막이 나오는 것은 나의 선택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런 내가 요즘에 채널을 돌리다 멈추는 곳이 있다. 바로 뉴스이다. 뉴스는 자막이 필요 없다. 화면을 보지 않아도 된다.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릴 적 좋아하는 가수를 쫓아 그의 행동 하나 말투 하나, 스케줄까지 다 따라다녔었다. 그와 비슷한 짓을 마흔이 넘어서 하고 있다. 바로 대선 후보들에 대한 거다. 연애인을 따라다닐 때랑 다른 점은 그들이 좋아서는 아니라는 점이다.
투표권을 가지게 된 지 20년, 정치적 미성숙자 취급을 받던 20년을 통 틀어 지금처럼 정치, 시사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전에 가장 대선에 관심을 가졌던 때는 고등학생 시절인 15대 대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행평가 때문에 신문 사설을 일부러 찾아 읽고는 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선거권은 없었고, 딱 그것에만 불만이 있었다. 그 당시 최고의 관심사는 정치가 아니라 성적이었다.
그럼 지금 나의 최고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돈, 교육, 인권과 관련된 것들이다. 자연스럽게 나라에서 하는 정책과 연결된다. 처음에는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어떻게든 흘러가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들로 치부해버렸다. 그런데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마흔 줄의 나는 알았다. 그게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나와 내 가족의 삶의 방향의 일부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남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라디오로 시사 프로그램을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다. 가끔 이슈가 되는 이야기를 남편과 나누면서 듣는 시야가 넓어지고 깊이가 생겼다. 꼭 야구장에 처음 가서 멀뚱이 보다가 옆에 사람들이 일어나면 같이 일어나 환호하다가 차츰 야구의 규칙을 알게 되면서 진정으로 야구를 즐기게 되던 때와 비슷하다. 참, 그때도 남편은 친절하게 야구 해설을 옆에서 해줬다. 혹 그렇게 하지 못할 때는 야구 중계가 되는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서 내 귀에 이어폰을 꽂아 주었다. 지금도 남편은 불쑥 정치적 이야기를 던진다. 그리고 멀뚱멀뚱한 나에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말해준다. 그러면서 꼭 뒷받쳐 하는 말은 '이건 내 생각이고 너는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어'라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 나만의 시선으로 정치를 바라보게 되었고 나름의 신념이라는 것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주말 오후 산책을 하고 들어와 뜨개질 거리를 손에 들고 TV를 틀었다. 이번에는 넷플릭스로 오랜만에 드라마 하나를 골랐다. 김태리가 나오는 <스물 다섯 스물 하나>다. 회식 자리에서 마신 술을 깨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온 김태리(나희도 역)의 엄마(신재경 역)와 남자 주인공(백이진 역)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뉴스 앵커인 신재경에게 백이진이 묻는다. 선배님의 꿈은 무엇이냐고. 신재경은 말한다.
"뉴스가 재미있는 게 내 꿈이야."
타 방송사의 뉴스가 라이벌이 아니라 신재경의 라이벌은 드라마, 영화 같은 거라고 한다. 그것들을 제쳐놓고 뉴스를 보고 싶도록 재미있게 하는 것이 꿈이란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저 사람이 재미있게 안 해도 마흔이 넘으니까 드라마보다 뉴스가 더 재미있어지는데... 저 사람 적어도 나 같은 사람 때문에 꿈을 이뤘네."
나는 오늘도 아침에 놓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 이어폰을 꽂고 천변을 걷는다. 이제는 재미있어서라기 보다는 꼭 관심을 가지고 잘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의견과 맞는 곳과는 연대하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잡기 위해 목소리를 낸다. 그것이 서명과 같은 아주 작은 행동일지라도 말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야구팀을 따라 나도 그 야구팀을 응원했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아무리 남편이더라도 의견은 주고받으며 생각을 공유하지만 내가 원하는 정부와 그가 원하는 정부가 다를 수 있다. 정 반대의 방향을 바라본다는 말로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우리 부부가 입을 모아 하나의 의견을 합치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민주주의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꾀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롭게 외치는 국민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도 둘이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토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