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목욕탕에서 세신하는 방법
아이들이 학교로 떠났다. 서둘러 집안을 정리하고 목욕 용품을 챙겨 대중목욕탕으로 향했다. 엄마와 함께 살때는 날씨가 추워지면 매 주 찾아가던 곳인데, 코로나 이후 쉽게 가질 못했다. 지금은 엄마 또한 가까이 계시지 않으니 등 밀어 줄 사람도 없다. 요 며칠 찌뿌듯한 몸을 뜨거운 탕에 담그고 싶다는 열망과 운동 삼아라는 핑계로 일부러 땀을 내며 걸어서 갔다.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마스크를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며 챙겨간 방수마스크를 손에 들고 탕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세신 하는 곳으로 갔다. 칠판에 검은 색연필로 열쇠 번호를 적었다. 세신을 하면서도 들어오는 손님을 챙기는 세신사분은 선불이라고 하셨다. 급하게 다시 탈의실로 나와 챙겨온 현금을 들고 왔다. 내가 적은 번호 옆에 동그라미를 치라고 또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내 앞에는 두 개의 번호가 적혀있다. 두 분의 세신사가 계시니 삼십 분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내 차례가 올 거라 예상했다. 그 사이 애벌로 샤워를 하고 머리도 감는다. 그리고 뜨거운 탕 안에 들어가 충분히 때를 불려야 한다.
번호를 적을 때, 때를 밀고 계셨던 분들이 나오고 새로운 분들이 들어갔다. 대략 삼십 분이 걸릴 거다. 잠시 안마 탕에 들어가 물 폭포를 배와 허리에 맞는다. 이렇게 하면 지방이 조금 부들부들 해질라나? 이 시원함을 더 만끽하고 싶지만, 안마 탕은 냉탕이다. 때를 불려야하기 때문에 금방 온탕으로 갈아탔다. 내 차례가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세신 하는 곳에서 더 가까운 열탕으로 자리를 옮겼다. 옆에는 나처럼 차례를 기다리는 듯 보이는 할머니도 대기 중이다. 또 세신을 마친 사람이 나온다. 내 차례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간다. 그리고 옆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도 따라 들어간다. 그리고 큰 소리가 오간다. 아마도 내 차례니 네 차례니 옥신각신하는 것 같다. 내 차례였던 것 같은데... 몬가 착오가 있는 것 같은데 나까지 그 소란에 끼고 싶지 않아서 탕 안에 앉아 있었다. 나와 함께 기다리던 할머니는 다시 탕으로 들어와 자신의 억울함을 누구라도 들어줬으면 하는 눈치로 세신사 욕을 한다. 나는 슬쩍 자리를 피해 다시 조금 낮은 온도의 온탕으로 옮겼다. 조금 뒤 세신을 마친 한 사람이 나온다. 기다리던 할머니는 다시 일어난다. 세신사가 나와서 단골인 듯한 아주머니께 사인을 보낸다. 일어난 할머니는 다시 싸움을 걸 기세였는데 눈치 빠른 세신사가 모시고 들어간다. 아마도 단골인 분에게 양보를 부탁한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 차례는 언제인거지?
양보했던 단골 아주머니가 세신실로 들어간 뒤 조심스럽게 뒤따라 들어가서 물어보았다. 나는 그 다음 차례라고 한다. 때를 불린지 벌써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삼십 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거다. 목이 탔다. 물을 마시러 탈의실로 나가니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시원하고 상쾌했다. 젖은 손으로 일회용 종이컵의 각을 간신히 잡아 물을 두 컵 들이켰다. 탕에 다시 앉아 오늘 해야 할 일, 적어야 할 글귀 같은 것을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멍한 상태다. 머리에 트리트먼트라도 발라야겠다. 들어오자마자 급하게 감았던 머리에 다시 샴푸를 묻히고 거품을 잔뜩 냈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쭉 밀어서 풍성하게 피어오른 거품을 바닥으로 처벅 떨어뜨린다. 깨끗이 행군 머리에 트리트먼트를 충분히 바르고 마사지를 한다. 행구지 않은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최대한 정수리 가까이로 머리를 꼬아 고무줄로 고정시킨다. 세신대에 누웠을 때 베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드디어 내 번호가 불렸다. 세신사분께 살짝 눈인사를 하고는 세신대 위에 눕는다. 오랜만에 내 몸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매번 부끄럽다. 잠이 오지는 않지만 눈을 감는다. 능숙한 솜씨로 발부터 밀기 시작해서 몸을 지나 어깨로 올라오는 손길. 세신사의 때 수건은 언제나 까슬하다. 그 까실함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방금 딴 사이다의 탄산 같은 매운맛이랄까.
부드럽게 오른손을 쓰윽 밀어 내 머리 위로 올린다. 겨드랑이가 시원하다. 그대로 반대쪽 팔을 지나 다시 왼발까지 내려온다. 그 때, 세신사분은 가볍게 내 오른발을 두 번 두드린다. 돌아누우라는 신호다. 이때 엎드리면 안 된다. 오른쪽을 바라보고 옆으로 눕는다. 오른 다리는 바닥에 두고 왼 발은 무릎을 굽혀 살짝 들어준다. 그러면 때 수건은 오른다리의 안쪽을 거친 후 곧 왼다리를 포개고 포갠 다리의 바깥쪽을 지난다. 이번엔 왼쪽이 타깃. 왼쪽 엉덩이와 옆구리와 팔, 목을 쓱 거쳤다가 등을 타로 다시 내려간다. 왼발에 두 번의 터치가 느껴진다. 엎드리라는 신호다. 제일 가려웠던 등이 시원하게 밀리면 그 다음엔 왼쪽을 바라보고 돌아눕는다. 처음 세신을 할 때는 이 모든 신호가 낯설었다. 지금도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하나만 기억한다. 오른쪽으로 반 바퀴씩만 돌아눕기.
이렇게 한 바퀴를 돌아누울 동안 한 번도 내 몸에 물이 뿌려지지 않는다. 살짝 실눈을 뜨고 보면 보이는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그것들이 부끄러워 다시 눈을 감는다. 물이 한번 온 몸에 뿌려진다. 세신사분은 일어나 앉으라고 한다. 그러면 누워서 세심하게 손이 닿지 못했던 목과 어깨부분을 밀어주신다. 몸을 잘 불려서 때 밀기가 수월했다고 하신다. 내 의도는 아니었지만, 두 시간이나 불린 몸이니 당연한 말씀이다. 기다리게 한 미안함에서 하신 말씀이신지.
다시 누우면 온 몸에 물이 뿌려지고 거품을 잔뜩 낸 바디샴푸가 부드럽게 온 몸을 지난다. 돌아누우라는 신호에 이번에는 한 번에 엎드린다. 등과 엉덩이에 바디 샴푸가 지나면 발뒤꿈치를 세워서 각질을 벗겨주신다. 그리고는 바가지 모양으로 손을 모아 다리 뒷부분과 엉덩이 등을 팡팡 두드려주신다. 사실 기다리면서부터 이 소리가 세신이 끝났다는 신호임을 알았다. 팡팡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내 순서가 다가왔다며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어? 그러고 보니 얼굴을 안 닦아 주셨다. 내 기억에는 스팀 수건을 얼굴에 대 주고는 오일로 살짝 마사지를 해주곤 했는데... 아마도 마스크 때문인 가보다.
몸에 묻은 바디샴푸를 타고 세신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온다. 조용히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를 남기고는 샤워대로 향한다. 아까 머리에 발라놓은 트리트먼트와 몸에 묻은 바디샴푸를 씻어내면 오늘의 목욕은 끝이다. 탈의실로 나와 매끈해진 얼굴에 평소보다 꼼꼼하게 스킨과 로션, 에센스와 크림까지 바른다.
비루한 몸 하나 닦는데 장작 두 시간 반이 걸렸다. 땀을 내며 걸어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데 이상하게 아까와는 다르게 땀이 흐르지 않는다. 그냥 상쾌하다. 그 상쾌함을 더하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가 옥수수 수염차를 하나 사서 마신다. 요즘 읽고 있던 책 불편한 편의점을 떠올렸다.
목욕 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고 장황에게 쓰고 보니 웃기고 부끄럽다. 하지만 혹 세신을 처음으로 받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매뉴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매번 나도 놓치는 것이지만 세신을 예약할 때는 꼭 나의 순서가 몇 번째인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를 물어보자. 단골이 많은 여탕의 특성상 내가 생각한 순서와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세신이 아닌 전신 마사지를 받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시간은 배가 들어가기도 한다.
코로나도 빨리 종식되고, 돈도 많이 벌어서 엄마랑 둘이 나란히 누워 때도 밀고 전신 마사지도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