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장 명단

- 내게 더 소중한 명단들

by 권성선

언제부턴가 내게 오는 경조사 연락은 결혼식 청첩장이나 아이 돌잔치 초대장이 아니라 부고 소식이 더 많아졌다.
젊은 날에는 주말마다 웨딩홀을 다니던 기억이 있다. 신랑·신부 입장곡이 귓가에 쌓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검은 옷을 챙겨 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일이 더 잦아졌다. 삶의 풍경은 그렇게 조용히 바뀌어 있었다.

장례식장에 가면 가끔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부고 문자가 고인의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들에게도 전송된다는 말.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가볍게 넘기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내 휴대폰 속 번호들을 떠올렸다.
‘만약 내가 지금 세상을 떠난다면 누구에게까지 이 소식이 흘러가게 될까?’
그 질문은 뜻밖에도 나를 오래 붙잡았다.

나는 그때부터 연락처를 주기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어떤 모임에 나가면 그날 만난 사람들의 번호를 습관처럼 저장했다. 아이들 학부모 모임에서, 한때 함께 일했던 직장에서, 함께 활동했던 수많은 단체에서, 심지어는 잠깐의 프로젝트로 엮였던 사람들까지. 그렇게 쌓인 번호가 수천 개에 달했다. 하지만 정작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이름은 그보다 훨씬 적었다.
내가 떠난 뒤 그들에게까지 부고 문자가 간다면 그것은 추억이 아니라 당혹감일 것이다. "왜 나한테까지 연락했지?" 하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기준을 세웠다.
내 부고를 받았을 때 잠시라도 마음이 저릿해질 사람, 내 부재에 서운함이나 아쉬움을 느낄 사람, 내 이름을 읽으며 한순간이라도 눈을 감을 사람. 그런 이들만 남기기로 했다.
반대로 내 소식을 듣고 당황하거나 의아해할 뿐 다시는 나를 떠올리지 않을 사람들은 과감히 정리했다.

처음에는 이 작업이 다소 차갑게 느껴졌다. 살아 있는 동안 번호를 지운다는 행위가 잔인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것은 정리가 아니라 배려일 수 있다는 것을. 내 마지막 소식이 누군가에게 불필요한 짐이 되지 않도록 미리 다듬는 마음. 그렇게 생각하니 삭제 버튼을 누르는 손길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죽음을 의식하며 연락처를 정리하는 일은 단순히 휴대폰 속 숫자를 지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내 인간관계의 경계를 다시 살펴보는 일이기도 했다. 가까움과 멀어짐, 애틋함과 무심함을 구분하는 일.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내가 어디까지 마음을 내어주었는지를 돌아보는 일. 언젠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아 있을 ‘풍경’을 가늠하는 일이었다.

죽음은 너무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언제 닥칠지 모른다. 그 불확실성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오늘을 더 정직하게 살게 된다. ‘내일’이란 보장이 없다는 걸 알기에 지금 내 곁의 관계를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성숙하게 대하려 한다.

이제 내 휴대폰에 남은 명단은 단순한 전화번호부가 아니다. 그것은 언젠가 부고 명단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다르게 부른다.
내게 더 소중한 명단들.
그 명단 속 이름들은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며, 끝내 지우지 못할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 순간에도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아주 가끔은 실수를 하기도 한다.
나에게 반갑게 전화를 건 사람에게 무심코 “누구세요?”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나는 그들을 이미 먼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정작 그들은 여전히 나를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때면 민망함에 웃음이 난다. ‘아, 관계라는 게 내 마음대로 정리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내가 멀리한다 해서 반드시 멀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가움 속에서 오래도록 이어져 있던 보이지 않는 끈을 새삼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연락처 정리는 결국 완벽한 정리가 될 수 없다. 대신 가끔은 뜻밖의 반가움이 찾아와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그런 어설픈 순간들마저, 내게는 소중한 이름들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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