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의 바른 아이였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기를 기대받았고 그렇게 행동하도록 배웠다.
외할아버지는 예의범절에 엄격하신 분이었다.
전화 한 통을 걸더라도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누구입니다. 혹시 누구누구와 통화 가능할까요?”
말끝을 또박또박 정리해야 했다.
첫인사는 반드시 “안녕하세요”여야 했고, 전화기를 내려놓을 때는 반드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라는 말이 따라야 했다.
나는 그 말들을 거의 주문처럼 외웠다.
‘예의’는 마치 내가 살아남기 위한 문장 구조 같았다.
목소리는 밝게, 단어는 또렷하게, 웃음은 조심스럽게.
밥상 앞에 앉을 때는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드신 후에야 따라 들었고 “잘 먹겠습니다”는 식전의 의식이었다.
밥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용납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규칙을 몸에 새기듯 익혔다.
머리카락을 넘기는 손끝에도, 교복 치마를 정리하는 자세에도, 말투와 눈빛에도 ‘예의’가 빠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 시절 나는 예의 바른 아이로 보이기 위해 자주 내 감정을 삼켰다.
화가 나도 얌전히 웃었고, 억울해도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감정보다 태도가 먼저였고, 눈물보다 인내가 더 어른스러웠다.
나는 왜 그렇게 예의 바르게 단정하게 굴었을까.
지금 돌아보면 어쩌면 그건 ‘사랑’ 때문이라기보다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 않았다.
그분들이 나를 지켜준 시간을 부끄러워지는 순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결손가정 자녀라는 말. 나는 그 말이 나를 가리키는 게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더 예의 바르게, 더 단정하게, 더 반듯하게 굴었다.
나는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교복의 리본이 삐뚤어지지 않게 하루에도 몇 번씩 매무새를 고쳤다.
나는 그렇게 나를 감췄고 그 감춤이 하나의 태도가 되었으며 그 태도는 지금까지도 나를 따라온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지금도 나를 보면 종종 그런 말을 한다.
“단아하시네요.”
“참 단정한 인상이세요.”
그 말이 싫진 않다.
그 안에는 내가 지켜낸 시간들이 조용히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외할아버지는 자랑스러워하셨다.
“우리 손녀는 예의가 바르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더 단정히 앉고, 더 또박또박 말하려 애썼다.
외할아버지는 두발 자전거 타는 법도 내게 가르쳐주셨다.
무릎이 까져도, 발목이 비틀려도,
"다시 타보자, 할 수 있다"
그 말은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나는 어쩌면 그때 처음 실수해도 괜찮은 나를 배웠는지도 모른다.
한 번 넘어졌다고 실망하지 않는 어른,
말없이 등을 떠밀어주는 어른,
그분이 외할아버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