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가를 떠나 안동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했다. 전교 1등을 하던 내가 작은 시골 학교를 떠나는 건 외할머니의 결정이었다. “넌 더 넓은 세상을 봐야지. 여기선 답답하잖아.”외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 뒤에는 오래도록 접어둔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 짐을 옮기던 날, 기숙사 앞은 들뜬 소란으로 가득했다. 누구는 아빠와 누구는 엄마와 손을 맞잡고 이불이며 책이며 바리바리 챙겨 들어왔다. 나는 큰외삼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였다. 당시 경주에 살던 큰외삼촌은 기사노릇을 하기 위해 할머니의 호출에 달려와야 했다. 큰외삼촌은 묵묵히 박스를 날랐고, 외할머니는 교무실로 찾아가 담당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는 방앗간에서 갓 한 떡이라며 쑥떡을 챙겨주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지만 목 안 깊숙한 곳이 자꾸만 뜨거워졌다.
작은 찬합통 하나에 담긴 할머니의 정성이 고마웠고, 그 수고로움이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기숙사 앞, 친구들이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서로를 껴안으며 웃는 풍경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꽃다발을 안고 있었고, 누군가는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눈을 반짝였다.
나는 그들 속에서도 분명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항상 무언가가 빠져 있는 느낌이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결핍이 어깨너머로 스미듯 따라왔다.
여고 기숙사는 학교 본관과 나란히 붙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의 환한 표정들과 가족들의 북적임이 점점 멀어지고, 나는 보자기에 싸인 쑥떡이 든 가방을 들고, 조용히 기숙사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슷한 외벽, 닮은 창틀. 그런데도 한쪽은 수업과 질서, 다른 한쪽은 고요와 잠이 깃든 공간이었다. 기숙사 앞에는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누군가의 저녁이 피어나는 창문,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고양이 우는 소리, 식탁 위 불빛이 흐릿하게 번지던 창.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밤, 그 불빛들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언어 같았다. 너무 따뜻해 보여서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집, 누군가의 방. 누군가의 ‘당연한 귀가’가 이어지는 밤.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고,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밤이면 복도 끝 창가에 혼자 서 있곤 했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면 기숙사는 급격히 조용해진다. 가방을 끌며 웃는 친구들, 부모님 차에 오르며 손을 흔드는 뒷모습. 친구가 남긴 “주말 잘 보내”라는 쪽지는 가방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다정함이 서러운 밤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누구에게도 “보고 싶다”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늘 잘해야 했고, 반드시 이겨내야 했으며, 무엇보다 늘 감사해야 하는 아이였으니까.
그래서 더 조용히 아팠고, 그 아픔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더욱 깊숙이 잠가버렸다.
기숙사 밥은 정해진 시간에 식당에서 먹는 시스템이었다. 늘 똑같은 메뉴, 늘 미지근한 국. 배는 채워졌지만, 마음은 자주 허전했다
불 꺼진 복도 끝 자판기 앞으로 슬리퍼를 끌며 걸어갔다. 뜨거운 밀크커피 버튼을 누르고, 컵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 커피를 함께 마실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방으로 돌아와 참고서를 펼쳤지만 글자들은 흐려졌다. 나는 먹고 싶은 것보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더 오래 하고 있었다. 기숙사 뒤편엔 낡은 공중전화박스가 하나 있었다. 평일 밤에는 항상 줄이 생겼다. 누군가는 동전을 세어 넣었고, 누군가는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 박스 앞에 서서도 늘 몇 번을 망설였다. 전화를 걸어도 받을 사람이 없을까 봐. 혹은 받아도 어색한 정적이 흐를까 봐. 결국 동전을 쥔 채 돌아서기 일쑤였다. 대신 벽에 기대어 수화기 너머로 새어 나오는 “엄마, 나 오늘은” 같은 말을 몰래 들었다. 그 평범한 말이 그렇게 부러웠었다. 어느 날, 엄마가 보낸 편지가 도착했다.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 나눠주던 종이 더미 속에서 내 이름이 적힌 봉투 하나가 나왔다. 고이 접힌 종이에는 엄마의 반듯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밥 늦지 않게 챙기고, 사랑해. 딸’ 별것 아닌 말인데도 그 문장을 책상 위에 펼쳐두고 밤새 들여다봤다. 무릎담요처럼 그 말이 내 마음을 덮어주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밤이 늘 외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기숙사에는 나처럼 남아 있던 친구가 있었다. 같은 방을 쓰던 룸메이트. 우리는 금요일 밤마다 텅 빈 복도와 교실을 누비며 우리만의 시간을 만들었다. 빈 교실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가면 창밖의 아파트 불빛이 교실 바닥까지 스며들었다. 책상에 나란히 앉아 문제집을 풀고, 풀다 지치면 서로의 오답을 보며 웃었다. 누군가 책상 위에 두고 간 우유를 조심스레 수거해 컵도 없이 미숫가루를 타서 나눠 마셨다. 단맛과 구수함이 입 안에서 섞일 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간식을 먹는 기분이었다. 세탁기가 없던 기숙사. 우리는 세면대에서 찬물로 양말을 빨고, 손끝이 얼어붙어도 장난을 쳤다. 작은 탈수기 '짤순이'에 옷을 넣고 돌리며 “이 순간이 언젠가 그리워질 거야.” 하고 진심으로 말하곤 했다. 누군가의 품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밤의 우리는 서로에게 귀가처가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