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는 말을 삼키던 아이

by 권성선

유년의 어느 겨울이었다. 기침이 끊이지 않던 밤, 나는 이불속에서 조용히 몸을 웅크렸다.
열이 오르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을 때서야 외할머니가 내 이마를 짚었다.
“아이고, 온몸이 불덩이네. 우야믄 좋노!”
곧이어 외할아버지가 자전거를 끌고 마당으로 나왔다.
나는 외투 속에 싸여 외할아버지 자전거 뒷자리에 올라탔다.
몸이 휘청였고, 눈은 자꾸 감겼다.
나는 할아버지의 허리를 작은 팔로 꼭 감쌌다. 내가 온전히 기댈 수 있었던 건 오직 할아버지의 따뜻한 체온뿐이었다.
겨울 아침 공기는 살을 파고들었다.
몸은 뜨거운데 바람은 너무 차가웠다.
자전거 바퀴가 덜컹이며 골목을 지나던 소리,
사각거리는 타이어 소리, 외할아버지의 무릎이 움직이는 리듬.
나는 아픈 와중에도 그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

동네 의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주사를 맞고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외할아버지의 낡은 점퍼 소매 자락이었다.

외할아버지의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괜찮다… 다 지나간다…”
그 말보다도 손끝에서 전해지던 체온이 주사보다 더 깊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집에 돌아와 이불속에 다시 눕자 외할머니가 다슬기국을 끓이셨다.
된장을 풀고, 아욱을 듬뿍 넣은 국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을 들고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내 머리맡에 앉으셨다.
나는 그 국을 조심스럽게 떠먹었다.
짭조름하고 구수한 맛이 목을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그 국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딱 지금 내 마음에 맞는 온도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아프지 않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다.
사람이 아플 수 있다는 것.
아픈 사람 옆에 조용히 앉아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이후로도 나는 종종 아팠지만, 그날의 다슬기국 맛과 자전거 뒤에서 느꼈던 외할아버지의 허리 온기는 오래도록 내 마음의 한쪽을 덮어주었다.

아직도 나는 “괜찮다”라고 말하기 전에 마음속으로 한 번쯤 그 겨울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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