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의 작은 나에게] 시리즈, 조용한 집, 따뜻한

by 권성선

대학 2학년이 되자 기숙사를 더는 사용할 수 없었다. 갈 곳이 없었다. 집은 여전히 IMF의 그늘 속에 있었고, 자취방을 구해줄 형편도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공부 모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던 간사님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성선 자매, 우리 집에서 지낼 생각은 없어요? 방이 하나 비어 있는데 괜찮다면 함께 살아도 좋을 것 같아서요.”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한마디 속에 담긴 배려와 조심스러움이 얼마나 큰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 집에는 간사님 부부와 갓 돌을 지난 아기가 있었다. 누군가의 하루가 오롯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학생인 내가 불쑥 들어간다는 것은 서로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제안은 그 해 봄, 내게 주어진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집의 작은 방 하나를 쓰게 되었다. 얹혀 사는 듯한 마음에 어깨가 자주 굳곤 했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조심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말씀 묵상과 기도를 함께하며 신앙 안에서 나의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소박한 저녁상이었지만 누군가와 함께 앉아 밥을 먹는 일은 그 시절의 나에겐 눈물이 날 만큼 고마운 일이었다. 세상의 갖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넘어지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런 신앙 공동체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간사님 댁은 선교단체의 공동체 공간이기도 했다. 종종 동역자들이 모여 찬양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나는 작지만 든든한 보호막 아래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간’을 배웠다.


집을 떠나던 날, 짐을 모두 챙기고 마지막으로 식탁에 앉았을 때 간사님 부부는 평소처럼 웃으며 말했다.


“언제든 힘들면 다시 와도 돼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울타리였는지 그들은 아마 다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집은 내 인생의 첫 ‘쉼터’였고, ‘혈연이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운 시간이기도 했다. 세상의 상처에 너무 일찍 물든 나에게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치유가 되는지를 조용히 알려준 첫 번째 ‘타인의 집’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삼십대의 신혼부부가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결정이었는지를. 그들이 내게 내어준 공간은 단순히 방 하나가 아니라 삶의 소중한 한 조각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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