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하우스(간사님댁)에서의 생활은 크게 힘들지 않았지만, 학교까지 왕복 세 시간이 걸렸다.
언덕을 올라야 했고, 학교와 비전하우스는 종점과 종점이었다.
그 긴 이동은 어느 순간부터 큰 부담이 되었다. 버스안에서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첫차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학교 근처에 있는 학사관을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처음 들어섰을 때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낡은 건물의 한 층을 얇은 판넬로 구획한 공간.
방마다 ‘창’이라 불리는 사각형 구멍이 있었지만, 그 창은 어디에도 닿아 있지 않았다.
빛도, 바람도 통과하지 않았다.
창을 열어도 들어오는 건 건물의 숨죽인 적막뿐이었다.
낮에도 방 안은 이미 완벽한 암흑이었다.
그곳에서의 첫날 밤, 나는 불을 끈 뒤 가만히 누웠다.
온몸이 긴장이 풀리기보다 어느 이상한 평온함이 감싸왔다.
스스로 더 깊은 어둠을 찾아 무거운 음악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틀었다. 그 시절, 나는
일부러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내려가곤 했다. 무거운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며 감정이 바
닥 끝까지 가닿을 때까지 나를 밀어붙였다. 어둡고 슬픈 음악만이 나를 완전히 잠재울
수 있었다.
그렇게 무너지는 시간 속에서 자주 꺼내 읽었던 책들이 있었다. 전혜린, 그리고 김승희.
그들의 문장엔 차가운 계절을 껴안고 사는 사람만이 아는 침묵이 있었고, 그 침묵은 마
치 오래된 위로처럼 내 곁에 머물렀다.
말로 다 담기지 않는 마음을 안고, 나는 그런 문장들에 기대어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그날의 음악과 문장 속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
었으니까.
그때 들려온 건, 옆방에서 흘러나오는 작고 낮은 콧노래였다.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자
신만의 위로를 부르고 있었다. 그 소리는 낯설었지만 이상하게 울컥하게 만들었다.
며칠 뒤, 늦은 밤이었다. 배가 고팠지만, 냄비를 꺼내기가 귀찮았던 밤. 그러다 부엌 쪽
에서 조용한 물소리와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누군가가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머리만 내밀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말없이 두 개의 젓가락을
꺼냈다. 그리고 반쯤 익은 면을 반으로 나누어 내 그릇에 덜어주었다.
"안 먹었지?"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잠시 목이 메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따뜻한 라면을 나눠 먹었다. 어둠 속에서 그
렇게 함께 먹은 한 끼. 그것은 단순한 라면이 아니라 나를 다시 사람으로 연결시켜 주
는 작은 빛이었다.
그 방에서는 사소한 모든 것이 생존의 기술이었다. 부루스타 불꽃을 조절하는 손끝의 감
각, 전기밥솥에 쌀을 씻어 물을 맞추는 일, 누군가의 말 없는 배려를 조용히 눈치채는
일. 모든 것이 천천히 흘렀고, 나는 그 느림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감정은 점점 안으로 굳어갔고, 그 굳은 마음이 오히려 나를 지켜주는 벽이 되었다. 그러
나 가끔은 아주 가끔은 사소한 것에 울컥했다. 옆방에서 들려오던 낮은 웃음소리, 늦은
밤 누군가 부엌에서 끓이던 라면 냄새. 그 모든 사소한 것들이 나를 지나가며 조용
한 위로가 되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도 다시 누군가를 이해하고, 조용히 나를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 알게 되었다. 빛은 바깥에서 오는 것만이 아니란 걸. 어둠 속에서도 마음 한가운데
작고 희미한 빛이 피어날 수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게, 나는 그렇게 조금씩 자라고 있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