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의 작은 나에게 시리즈] 처음 마주한 죽음

by 권성선

“처음 맞는 상실은 마음 깊은 곳에 앉아 오래 울게 만든다.”

대학교를 막 졸업했을 무렵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해 봄은 다른 해보다 유난히 느리게 다가왔다. 외할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됐다는 소식은 겨울의 끝자락을 데우지 못한 채 천천히 내 마음을 싸늘하게 적셨다.

외할아버지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로 몇 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기력이 약해지고, 식사량이 줄고, 말수마저 적어지면서 눈빛 속 생기도 점차 옅어져 갔다. 그런데도 나는 이상하게도 그분이 정말로 떠나실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처럼 나를 돌봐주신 분이 그렇게 쉽게 우리 곁을 떠나실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례는 집에서 치러졌다. 작은 마당이 딸린 기와집이었다. 가세는 이미 기울 대로 기울었지만 외할아버지의 이름은 한때 마을의 유지로 불리며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네 명의 자녀 가운데 그 장례를 온전히 지켜낸 건 큰외삼촌과 막내외삼촌뿐이었다. 둘째 외삼촌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엄마는 채무 문제로 숨어 지내던 터라 장례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상복을 입은 삼촌들의 어깨는 무겁고도 어색했다. 삼베옷에 손을 집어넣는 일조차 서툴렀고, 조문객에게 허리를 숙이는 몸짓에도 어딘가 불안이 묻어났다.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아서였을까. 그들의 얼굴에는 서툴고 무너져 내린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가장 분명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이는 외할머니였다. 마치 이미 마음속으로 수없이 이별을 연습해 온 사람처럼 외할머니의 손은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고 목소리는 또렷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육개장을 끓이고 전을 부쳤다. 나도 그 옆에서 작은 손을 거들었다. 그날의 국물 냄새는 내 기억 깊이 새겨져서 훗날 비슷한 냄새를 맡기라도 하면 무의식 중에 고개를 돌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다.

“아이고, 아이고…”
외할머니의 곡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졌다. 그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삶 전체를 뒤흔드는 절규처럼 들렸다. 몇몇 아주머니들은 그 곁에 주저앉아 같이 울고, 등을 다독이며 함께 애통해했다.

나는 그 순간 결국 할머니 곁에 무너져 내리듯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가 손수 지은 수의를 입고 계셨다. 거친 삼베천에 정갈하게 접힌 소매, 고요한 천 아래로 움켜쥔 듯 모아진 손. 그 손은 내가 어릴 적 시장길을 함께 걸을 때마다 내 손을 꼭 잡아 주셨던 바로 그 손이었다. 그 손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사람이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몸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었다. 그 손길과 목소리가 더는 닿지 않는다는 뜻임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방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온기를 붙잡으려 애썼지만 시간은 무정했고 눈앞의 장례는 냉혹할 만큼 현실적이었다.

그날 이후, 죽음은 내게 더 이상 뉴스 속의 이야기나 먼 친척의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마음 한 자리를 조용히 차지한 채 앉아 있는 따뜻했던 사람의 부재였다.

이제 나는 안다. 사람이 떠났다는 것은 그 사람이 없다는 게 아니라 더는 나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것을.

[사진은 인공지능이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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