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의 작은 나에게 시리즈] 가족의 조건

by 권성선

병은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어떤 관계는 그 병 앞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피로 연결된 것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날, 나는 혼자 조용히 오래 울었다.

새아버지는 루게릭병과 비슷한 병으로 입원하셨다.

천천히 몸을 잃어가는 병.

엄마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시간이 이어졌다.

나 역시 보탬이 되고자 애썼지만 생계와 육아, 병원비 사이에서 내 손은 언제나 모자랐다.

엄마랑 통화할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은 두려움과 미안함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점점 굳어가는 새아버지의 몸, 말수가 줄어드는 엄마의 표정, 그 사이에서 나는 무엇도 확실히 해결해 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국, 나는 한 번도 연락해 본 적 없었던 새아버지의 친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번호를 누르기까지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우고.

전화를 걸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니, 아빠 병원비가 만만치 않아서요. 자식들이 병원비를 나눠 내면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조금이라도…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잠깐의 침묵. 그리고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한데요. 저희랑은 아무 상관없는 분이에요.”

그 한 마디에 가슴이 털썩 내려앉았다.

내가 왜 이 전화를 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더 컸던 건 분노였다.

피로 맺어진 가족이면서도 그토록 무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 말 한마디로 엄마가 받을 상처를 미리 짐작해야 했던 나 자신이 너무 화가 났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참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얘기했더니 엄마는 말했다.

“나는… 그 애들한테 엄마 소리 듣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었어. 그냥 계모라는 소리 안 들으려고 애쓴 것뿐이야. 그래도… 할 만큼은 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친딸에게는 아무것도 못해주었는데”

엄마의 말끝에 담긴 서운함과 체념은 차가운 바닥처럼 마음을 데웠다.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엄마한테 따지고 싶었지만, 더 마음 아플 사람은 엄마라는 걸 알기에 얼른 전화를 끊었다.

나는 끝내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버렸다.

“아빠 돌아가셔도 올 생각하지 말아요”

그리고 정말로 그녀들은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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