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치료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이 ‘가계도’를 그리는 일이라는 것을. 삼 대에 걸친 가족 관계를 선으로 잇고, 태어난 해와 사망 연도, 질병, 이혼, 재혼, 단절을 표시한다. 이름 옆에는 기호와 날짜를 붙이고, 감정의 흐름을 화살표로 그려 넣으며 하나의 ‘관계의 지도’를 완성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왔다. 그들의 가계도는 비교적 선명하게 정리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내 앞에 놓인 하얀 종이 위에서는 연필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라는 칸. 이름을 적을 수는 있었지만 그 글자가 내 삶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오는 것 같아 차마 쓸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직 살아 있는가. 아니면 이미 사라져 버렸는가.
엄마의 목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니 아버지는 결국 다 잃었더라. 그 여자가 도박으로 재산 다 날리고 남매만 두고 사라졌단다.”
툭 던져진 그 말 한 줄은 낡은 벽지처럼 내 기억의 한 구석에 여전히 붙어 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단단한 기둥처럼 서 있는데 그 아래로 이어지는 선은 언제나 흔들린다. 점선으로만 이어진 사람들, 얼굴조차 본 적 없는 형제,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이미 지워내고 싶은 이름들.
가계도란 단순한 관계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구조도이며 내 안에서 무너진 골조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나는 상담가가 되고 싶었다. 타인의 고통을 들어 주고, 그들의 삶을 함께 붙들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 삶의 한 조각을 적어 내려가려 할 때마다 나는 주저앉았다. 가계도를 그리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가계도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시작점을 선물하고 싶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 그 단순하고도 단단한 구조 안에 나는 수많은 결심과 다짐과 인내를 쌓아 올렸다. 지금 이 집, 지금 이 가족, 이 세 개의 이름은 내가 두 손으로 붙잡아 지켜 낸 한 장의 지붕이다.
가계도는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내 아이들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지도가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지도의 첫 자리에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했지만 내겐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온전한 원가족’을 그려 주기 위해 오늘도 애쓰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