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션과 넌픽션 사이의 글입니다.
4월 초순, 봄이 왔음에도 꽃샘추위가 매서워 공기가 서늘했다. 나는 이불을 덮은 채 새벽부터 뒤척였다. 대학 신입생이 된 지 한 달 남짓, 타지에서 낯선 얼굴들 속에 섞여 있다는 감각조차 희미하던 무렵, 그는 처음 나타났다.
기숙사 정문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서 있던 사람. 노란 후리지아와 하얀 안개꽃. 웃지도, 강요하지도 않는 표정. 그 꽃은 따뜻한 봄의 언어라기보다는 겨울의 잔향 같았다.
그는 민중가요 동아리 선배였다. 언제부턴가 내 주변에 자주 나타나던 사람. 노천 강당에서 기타를 메고 노래하던 모습, 피켓을 들고도 묵묵하던 얼굴. 웃음보다 침묵이 먼저였고, 온기보다는 그늘이 먼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밥은 먹었어?” 그가 자주 던지던 말이었다. 식당 앞에서, 도서관 앞에서, 강의 끝 무렵에. 단순한 물음이었지만 내게는 무겁게 느껴졌다. 그 말 속에 담긴 마음이 보였고, 그 마음은 이상하게 차갑게 다가왔다.
어느 날, 열이 나서 기숙사 방에 누워 있을 때였다. 그는 약봉지와 죽을 들고 찾아왔다. “밥은 못 먹었을 것 같아서.” 그 말에 속이 무너졌다. 그러나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내민 것이 약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걸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마음은 결코 따뜻하지 않았다. 그는 추운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는 나와 닮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아픈 줄 모르고 살아온 사람.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면서도 먼저 내어주는 법부터 배운 사람. 하지만 나는 그의 마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내 삶에도 축축한 그늘이 번져올 것 같았다.
몇 년 뒤, 그는 졸업 공연에서 마지막 노래를 불렀다. 기타를 메고 선 그의 뒷모습은 예전보다 더 말라 있었고, 목소리는 깊고 낮고 슬펐다. 나는 공연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마음이 너무 젖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따뜻하지만 그 따뜻함 안에 오래된 추위를 품고 있다. 나는 그가 싫었던 게 아니었다. 다만, 그의 겨울을 내가 껴안을 힘이 없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어쩌면 내가 더 추운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