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다섯 살이 되기도 전이었다.
“한 권만 더 읽어 줘.”
막내가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린 채 눈을 반짝였다. 그 눈빛은 이미 정해진 답을 알고 있다는 듯 장난스럽고도 간절했다.
“진짜 마지막이다? 약속.”
나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아 책장을 펼쳤다. 방 안은 스탠드 조명 하나만 켜 둔 채 조용히 숨죽인 듯 따뜻했다.
“이건 전에 봤던 거잖아.”
“그래도 좋아. 또 보고 싶어.”
아이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같은 이야기를 열 번도 넘게 읽었는데도 아이는 여전히 처음 듣는 듯 집중했다.
나는 캐릭터마다 목소리를 다르게 바꾸었고, 장면이 바뀔 때마다 눈을 한껏 치켜뜨거나 낮췄다. 그러면 아이는 어김없이 웃었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느꼈다. 이 시간만큼은 내가 아이의 전부라는 것을.
책을 덮자 아이가 내 팔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
“응?”
“엄마는 천국 같아.”
그 말은 너무 작았고, 너무 순해서, 나는 한순간 숨을 멈췄다.
“… 뭐라고?”
아이의 대답은 없었다. 조용히 숨을 고르더니,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이마에 가느다란 땀이 맺힌 채.
나는 잠든 아이를 바라보다가 이불을 다시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그 밤, 나는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아이의 말이 마음 안쪽에서 천천히 퍼져나갔다.
‘천국.’
그 말은 어떤 고백보다 진했고, 어떤 시보다 아름다웠다. 그림책을 읽어주던 밤은 내게도 작은 천국이었다.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 내 숨결에 안심하며 잠드는 존재. 그 모든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따뜻해서 나는 그날의 피로를 잊곤 했다.
우리는 매일 밤 같은 자리에 앉아 다른 세상을 여행했고, 다른 감정을 나눴고, 다른 꿈을 꾸었다. 작은 방, 한 권의 책, 그리고 나와 아이. 그것이면 충분했던 밤들.
그날 밤, 나는 잠든 아이의 이마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엄마도… 네가 천국이야.”
그 말은 공기 속으로 천천히 녹아들었다.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그건 분명히 닿았을 거라고 믿었다. 그 작은 방 안에 우리는 둘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곳은 엄마와 아이만의 작은 천국이었다.
그 아이가 벌써 열일곱 살이다.
삶이 버겁고 무거울 때마다 그때의 작은 천국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