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건 다섯 살 무렵이었다.
어느 날 오후였다.
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아이는 식탁 한쪽에 앉아 연필을 꺼내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물소리에 묻혀 조용히 흘러가던 시간. 그런데 문득, 뭔가 달라진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고무장갑을 낀 채로 고개를 돌렸다.
햇살이 들이치는 식탁 위에 아이가 펼쳐 놓은 종이 한 장.
그 위에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엄마 사랑해’
단 세 마디.
글씨는 삐죽이고 순서도 불분명했지만 그 말은 지금껏 들은 어떤 문장보다 정확하고 단단했다.
나는 손을 멈추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따뜻하게 데워졌다.
뜨거운 물보다 더 뜨거운 무언가가 조용히 심장 안쪽을 데우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처음 배운 단어가 ‘사랑’이었고, 그 사랑이 향한 대상이 나였다는 사실이 너무도 조용하게, 그러나 깊이 밀려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아이를 안았다.
작고 말간 얼굴, 살결처럼 말랑한 체온.
아이는 쑥스러운 듯 눈을 피했지만, 품 속으로 고요히 안겨 왔다.
“엄마도 사랑해.”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 후로도 아이는 가끔 글자를 흉내 내듯 적어놓았다.
‘엄’, ‘마’, ‘사’, ‘랑’, ‘해’
글자들이 줄도 없이 종이 위를 떠다녔지만, 그 안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건네본 사람’이라는 사실.
세상이 아무리 무거워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날, 아이가 처음 쓴 말은 단어가 아니었다.
사랑 그 자체였다.
그 종이는 아직도 내 서랍 속에 있다.
글씨는 조금 바랬지만 그 문장은 여전히 따뜻하다.